한국 6.25 전쟁 Korean War 476

한국 6.25 전쟁 당시 미 해병대 워터 버팔로 상륙 장갑차 LVT 부대의 한강 도강 - U.S Marines water buffalo amphibious LVT troops cross the Han River during the Korean War

한국 6.25 전쟁 당시 인천 상륙 이후 후퇴하는 적을 추격하여 서울을 점령하고 있는 공산 침략군대 북조선 인민 군대를 응징하기 위해 한강을 도강하여 병력을 수송하는 UN군 미 해병대 워터 버팔로 수륙양용 상륙 장갑차 LVT 부대의 LVT 4 와 미 육군 75mm 곡사포 장착 M8 모터 캐리지의 포탑을 장착한 LVT(A)-4 워터 버팔로 - 1950년 9월 20일 경기도 고양군 행주(幸州)

한국 도로변에서 불타는 북한 공산군의 T-34/85 전차들 - Burning of the North Korean Communist Army T-34/85 Tanks in the country road side during the Korean War

한국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지역 도로변의 감자밭에서 불타는 북한 공산군의 T-34/85 전차와 좌측 10시 방향의 또 다른 1대의 T-34/85 전차와 우측 2시 방향에 출현한 미군 M4A3E8 셔먼 전차 - 1950년 9월 한국 6.25 전쟁 당시 미군의 공격으로 인해 낙동강 지역 도로변 감자밭에서 불타는 북한 공산군의 T-34/85 전차 - 1950년 9월 4일 1950년 6월 25일 새벽 한반도 38선 이남의 대한민국을 적화 통일시킬 목적으로 침략 전쟁을 일으킨 후 낙동강 이남 지역외 남한 지역 대부분을 점령했다가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의 공산 침략군 응징의 결의에 따라 대한민국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던 UN군 한국 참전 16개국 군대의 파견으로 인천상륙작전 이후 완전히 세궁역진되어 그..

미 공군 네이팜탄에 파괴된 북한 공산군대 T-34/85 전차들- North Korean communist army T-34/85 Tanks destroyed by U.S Air Force Napalm tank during the Korean War

한국 6.25 전쟁 당시 경북 포항 비행장의 미 공군 제 77 전투 비행대 소속 P-51D 머스탱 전폭기 양익에 장착된 2발의 네이팜탄 탱크 - 1950년 한국 6.25 전쟁 당시 미 공군 P-51D 머스탱 전폭기 양익에 2발 장착된 110 갤런 짜리 네이팜 탱크 한국 6.25 전쟁 당시 대구 비행장의 미 공군 슈팅 스타 전투기 날개에 장착된 네이팜탄 -1951년 4월 한국 6.25 전쟁 당시 미군의 감독 아래 미 공군 P-51D 머스탱 전폭기 양익에 2발 장착시킬 110 갤런 짜리 네이팜 탱크에 네이팜유 채우기 작업을 하는 북한 공산군 포로들괴 중국 공산군 포로들 한국 6.25 전쟁 낙동강 전투 당시 경북 왜관 근처에서 미 제 5 공군 전폭기에서 투하시킨 네이팜탄에 의해 도로밑으로 쓸려 내려가 불타 파..

한국 6 25 전쟁 당시 UN 연합군 포병대의 피의 능선 고지 북조선 공산군대 거점 포격 - The bombardment of UN Allied Force Artillery at the North Korean communist Army base camp in the bloody ridge during the Korean War

한국 6 25 전쟁 당시 UN 연합군 포병대와 한국 육군의 강원도 피의 능선 고지 북조선 공산군대 거점에 대한 포격과 집중 사격 -1951년 8월 피의 능선 전투는 한국 6.25 전쟁중 1951년 8월 16일부터 9월 5일까지 강원도에서 벌어진 격전지 전투였다. "피의 능선"이란 명칭의 유래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해 능선이 피로 넘쳐 흘러 종군기자들이 이 능선을 피의 능선이란 이름으로 보도하면서 붙여졌다. 1951년 7월 개성에서 휴전 회담이 열렸으나, 결국 합의에 실패하였다. 그리고 8월 중순이 되자 장마가 그쳤고, 미국은 장마때문에 잠시 중단했었던 공격을 재개하기로 한다. 8월 18일, 능선에서의 전투는 대한민국 육군의 황엽 36 보병 연대장과 그의 부대의 선제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미군의 지원을 받았..

한국 6.25 전쟁 당시 UN 소련대사 야콥 말리크의 불참 - UN Soviet Ambassador Yakov Malik's absence during the Korean War

한국 6.25 전쟁 당시 UN 소련대사 야콥 말리크 - 1950년 8월 1950년 6월 25일 북조선 공산군대의 38선 이남을 넘어 침략 당시 그나마 한국에게 다행스럽게 작용했던 것은 1950년 6월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소련이 불참, 유엔군 파병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이었다. 소련의 불참으로 미국이 주도한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되어 유엔군이 조직되어 한국에 파병될 수 있었다.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하였더라면 미국은 '유엔과 국제사회가 북한군의 남침을 반대한다'는 명분을 살릴 수 없었다. 오히려 남의 나라 내부 문제에 개입한 침략자로 몰렸을 것이다. 그 결의안 통과는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사흘 뒤 미 해공군에 이어 미 육군까지 파병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종근당 기업 정신과 청와대 광화문 집무실 공약

소크라테스,석가,공자와 더불어 세계 4대 성인증 한사람이었던 성인은 "항상 깨어 있어라" 라고 말했다. 그 후 그 말은 세계 인류를 지배하는 유명한 금언중 하나가 되었다. 당신은 잠들어도 맥박은 뛰고 있습니다. 당신이 주무시는 한밤에도 종근당의 연구실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제약회사중의 하나인 종근당의 유명한 광고를 흑백 TV 시절이었던 1970년대 부터 누누히 들어와 그 광고의 문구는 그 어떤 광고의 문구 보다도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며 귀에서 가슴으로 와닿아 국민 광고로서 국민들의 뇌리속에 깊이 인식이 되어져 있다. 1960년 3월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참가했다가 행방불명되었던 마산 상업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던 김주열은 실종 27일만인 4월 11일 마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