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 Air Force

루프트바페의 공격에 추락하는 미 공군의 비행요새 B-17 폭격기[WW2 German Luftwaffe Attacking B-17 Flying Fortress Down]

슈트름게슈쯔 2012. 5. 31. 14:43

 

 

독일 상공에서 폭탄을 투하시키는 미 공군 B-17 폭격기 편대

 

 

 

폭격 지점으로 비행하는 미 공군 351 폭격 편대의 B-17 폭격기 주변에서 작열하는 독일군의 대공 포화 - 1944년 3월 4일 

 

 

 

독일군의  88mm 대공포 Flak -37

 

 

 

 

 

미 공군 B-17 폭격기를 향해 공중에서 작열된 독일군 88mm 대공포의 파편들

 

 

 

 

폭탄을 투하시킨 B-17 폭격기에 작열되는 독일군의 대공 포화

 

 

 

 

독일군의 대공 포화에 명중되어 추락하는 미 공군 B-17 폭격기 - 1944년

 

  

 

독일 공군의 포케 볼프 Fw-190 전투기에 요격 당하여 추락하는 미 공군 B-17 폭격기

 

 

 

독일군의 대공 포화가 명중되어 추락하는 미 공군 제 836 폭격기 연대 487 폭격 대대의 B-17 폭격기

 

- 1944년 11월 30일 독일 메르세버그

 

 

 

독일 베를린 폭격시 독일군 88mm 포의  대공 포화에 의해 동체에 불이 붙은 B-17 폭격기

 

  

 

한쪽 날개의 절반이 떨어져 나간 97 폭격 대대의 B-17 폭격기

 

 

 

 

독일군의 대공 포화에 연료탱크에 불이 붙으며 추락하는

미 공군 324 폭격기 연대 91 폭격 대대 소속의 B-17  폭격기 Powerful Poodle - 1944년 11월 2일

이 사진은 같은 폭격 편대 소속의 B-17 폭격기의 유리창 너머로 LT David Paris가 촬영하였다,

이 B-17 폭격기는 5번째 임무로 독일 Ludwigshaven에

폭탄 투하 임무의 출격을 나섰지만 결국 추락하고 말았다.

 

 

 

 

 

 

 

독일 크라텐버그 (Cratenberg)상공에서 메샤슈미트 ME-262 제트전투기의 공중 사격에

한쪽 날개가 파손된채 추락하는 미 공군 322 폭격기 연대의 91폭격 편대 B17 폭격기 Wee Willie - 1945년 4월 7일

 

 





 

ME262 전투기

 

메서슈미트 Me-262 슈발베(Messerschmitt Me 262 Schwalbe)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메서슈미트사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실용 제트 전투기이다.

 

 

 

처음에 이 제트 전투기에는 독일 공군의  정예 조종사만이 탑승이 허락되었다.

전투에 있어서의 전제로서 공중전에서 하는 선회를 결코 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선회하면, 기체가 무겁기 때문에 빠르게 속도가 저하해 버리기 때문이었다.

저속으로부터의 가속력이 낮은 Me-262는 한 번 실속해 버리면

전투 중에 다시 실속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 속도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숙련된 조종사는 속도를 크게 떨어뜨리는 일 없이

완만하게 선회해, 폭격기의 편대를 추월해서 공격했다.

 Me-262의 특성을 이해한 독일 공군의 베테랑조종사는 연합군의 폭격기를 호위하고 있는 전투기를

처음부터 상대도 하지 않고, 폭격기들만을 일방적으로 격추할 시킬수가 있었다.

그러나, 전황이 악화되어 숙련된 조종사들이 점점 사라지면서 미숙한 조종사들도 탑승하게 되었다.

그들은 연합군의 조종사들에 의해서 선회전으로 끌여들여져 간단하게 격추되었다.

전쟁 말기가 되면서, 비행할 수 있는 기체의 수도 매우 적어졌다.

 비록 있었다고 해도, 압도적인 연합군기의 수에 비하면, 전쟁의 추세를 바꿀 수는 없었다.

 1945년 3월 18일  37대의 Me-262가 1221대의 폭격기와

그것을 호위 하는 632대의 전투기로 구성된 대폭격기대를 공격했다.

 그 결과, 12대의 폭격기와 1대의 전투기를 격추했지만, Me262 자신들도 3기를 잃었다.

 이 4대 1이라고 하는 격추율은 독일 공군이 꿈에 그리던 숫자와 같았지만,

연합군으로서는 전체의 1% 정도의 손해에 지나지 않았고,

오히려 고장으로 추락한 Me-262의 수가 많았다고 한다.

 

 

 

 

 

ME-262 전투기에 R4M 오르칸  로켓이 장착된 모습

 

 

 

사진속 위의 모델은 공대공 로켓이며

그 아래의 모델은 공대지 로켓이다. 

 

 

 

R4M  로켓의 분해 모습

 

 

 

R4M 오르칸 로켓이 발사되는 모습

 

 

메서슈미트 ME262 E-2 형은 R4M 로켓탄을 48발 탑재하는 특수형으로,

활약한 것은 패전 직전의 1개월간으로 짧지만, 무서운 전과를 올렸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다른 선진 기술과 함께 Me-262는 미국과 소련이 접수하여

 기체는 충분히 연구되어 미국,소련의 초기의 제트 전투기의 개발에 반영되었다.

 

 

 

 

 

 이 B-17 폭격기의 닉 네임은 Wee Willie였다.
이 B-17 폭격기 Wee Willie는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의 메샤슈미트 ME-109 전투기의 공격을 받고

추락하여 조종사를 비롯한 승무원 10명 전원이 사망했다,

 

 

 

독일 본토를 초토화 시키는 미 공군 B17 폭격기의 요격용  Wfgr21 로켓을 포케 볼프 Fw-190 전투기에 장착시키는 독일군

 

 
 
 
 
1943년 몇번의 주간폭격 실패의 쓴맛을 본 미국이었지만,
미국의 장기 중 하나가 끈질김과 그것을 받쳐주는 막대한 물량공급이다.. 
 미국은 B-17 E형과 F형의 수차례 보강 작업을 거쳤고, 정확도가 높은 주간폭격을 끈질기게 고집했다.
그리고 수차례 보강작업으로 B-17의 방어력이 향상되었다는 위안과 같은 기대도 있었던 것 같다.
다시한번 미공군의 폭격기 단독 전략폭격과 이에 맞서는 독일 요격기들의 대대적인 사투가 벌어지게 된다.
 
1943년 7월, 미국은 독일 슈바인푸르트의 볼베어링 공장과 레겐스부르크의 Bf 109 공장에 대한 폭격을 감행했는데,
제 3제국 심장부를 관통해야하는 극히 위험한 임무였다.
그리고 7월 17일, 이날 단 하루만에 376 대의 B-17 중 60기가 격추 파괴되고 말았다.
그 손실률은 거의 20%에 육박하는 것으로 B-17 임무는 정말 죽는냐 사느냐하는 것이,
돌아가는 리볼바 권총의 탄창에 의해 결정되는 러시안 롤렛 게임과도 비교되는 몸서리쳐지는 임무로 각인되었다.
즉 출격한 항공기 열에 한 둘은 결국 돌아오지 못하니,
언제 어느때 자신이 그 불운한 그룹에 속하게 될지... 그렇다고 특별히 어떤 기술적인 숙련이 이루어지면,
그 10%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격추되느냐 마는냐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날의 운에 달린 것이었다.

 

 
 
B-17 승무원들은 매일같이 피할 수 없는 임무에 대한 공포로 시달려야만 했다.
그러니, 지상에 돌아와 망나니 같이 구는 그들의 행동에 지휘부가 관대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분출구 마저도 허락치 않으면, 아마 그들은 모두 미쳐버렸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전투기 조종사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출격이 있는 날 아침 식사시간에는 취사병들에게
계란 요리를 자기가 원하는대로 해달라고 직접 지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날의 아침식사가 그들 생애 마지막 식사가 되어 버릴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1943년 9월 6일, 총 400 대의 폭격기들이 독일 슈투트가르트 볼베어링 공장을 폭격하기 위해 출격했지만
기상이 좋지 않아 폭탄은 도심에 투하되었고, 이날 총 45기의 폭격기들이 격추되었다.
그 한달 후인 1943년 10월 14일에는 슈바인푸르트 볼베어링 공장에대한 재폭격이 감행되었는데,
 출격한 총 291기의 B-17 중 60기가 격추 파괴되는 엄청난 피해를 또 다시 감내해야만 했다.

 

1944년 2월 20일.... 이날 부터 약 1주일간의 기간을 흔히 "대주간(The Big Week)" 이라고들 부른다.
 무수히 날아드는 B-17과 또 이를 요격하기 위한 독일 전투기 간의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계속되던 팽팽한 대결이 이때를 기점으로 확연히 연합공군의 우세로 돌아서기 시작한 것이다.
대주간 동안 연합공군은 244기의 중폭격기와 33기의 전투기를 잃었다.
그러나 독일 공군의 피해도 엄청났고, 짧은 시기에 많은 요격기와 우수한 파일롯들을 잃어 버린
독일은 이제 더이상,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루프트바페의 대들보가 부러져 버린 것이다.

(당시 연합군 폭격기 승무원들과 전투 조종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대주간 동안만 600기의 독일기를 격추했다고 하며,

 생산라인위에 올라있던 Bf 109 700대가 완성직전에 파괴되었다고 한다.

물론 한대의 요격기를 여러명의 사수가 동시에 조준할 경우가 많아

격추전과가 과장된 감이 있지만 수치로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대주간을 비롯해 1944년 첫 3-4 개월간

독일공군은 1000 명에 달하는  베테랑 장교 조종사를 잃고 만다.

이들은 모두 신참들에게 공중전의 진수를 전수할  수 있는 인재들이었지만,

연합 폭격대의 대공세를 막기 위해 출격해 하나 둘 격추되어 간 것이다.)

또 볼베어링 공장과 전투기 공장등에 집중되었던 1943년과는 달리
1944년 중반에 접어들면서 미국의 폭격 목표는 독일 연료로 전환되면서,
많은 정유 시설이 파괴되어 1944년 중반이후, 독일의 연료 생산량은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지기에 이른다.
이젠 독일은 비록 많은 전투기를 생산해 낼수는  있었지만,
정작 그것을 창공에 띄울 연료와 조종사난에 허덕이게 된 것이다.
이제 유럽의 전황은 최고의 정점을 넘어 제3 제국은 내리막길에 들어선 것이다.
지금까지 느리기는 했지만 독일을 한발 한발 뒷걸음 치게 만들고
드디어는 벼랑 끝에 서게 만든 연합군의 선두에는 엄청난 희생을 이겨낸 B-17이 있었다.

 

B-17 폭격기들은 유럽전선에서만 640,036 톤의 폭탄을 쏟아부었다.
이것은 B-24가 45만톤, 다른 모든 연합군 항공기의 투하량의 합계가 단지 46만톤이었던 것에 비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수치뿐 아니라, B-17이 투하한 목표는 대부분 독일의 기간 산업 시설들이었으니,
그 파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즉 유럽전선에서 연합군의 승리의 결정적인 견인차는 누가 뭐래도 B-17이 아닌가 싶다.
놀랍고 믿기 힘든 내구성을 지닌 B-17기들이 엄청난 희생을 치러냈다는 것은
그들이 수행한 임무의 난이도를 짐작할수 있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B-17은 총 12600 여대가 생산되었고, 그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4750대가 임무도중 격추 혹은 파괴되었다.)
그리고 세계최강 독일 공군에 맞서  용전분투한  B-17과
그 승무원들의 투혼이 이차대전의 승리와 종결을 앞당긴 것이니 그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전투기는 영화를 만들고 폭격기는 역사를 만든다고 했던가?
B-17 폭격기 편대는 진정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며, 그들의 무용담은 

푸른 창공의 역사에서 언제까지나 계속 될것이다 

 

 

 

 

 

phpto from : b17warhorse.fws1.com

fold3.com

             mission4today.com

                                     wwii-letters-to-wilma.blogspot.com

                      untoldvalor.blogspot.com

      ww2tot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