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스페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WW2 France Paris Musee du Louvre ]

슈트름게슈쯔 2012. 10. 9. 12:41

 

 

 

독일군의 파리 침공에 대비하여 다른곳으로 옮겨지는 루브르 박물관의 예술품 - 1939년 9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루브르박물관의 예술품들은 프랑스 각지에 감추어지기 시작했는데

그로써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었던 대부분의 예술품들은 나치스의 수중에 들어가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예술품들이 빠져나가 버린 황량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풍경 

 

2차 대전 당시 프랑스는 독일에 항복하고, 파리는 오랫동안 독일군들의 점령지가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루브르의 수많은 예술품들은 지금껏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것일까?

특히 히틀러는 엄청난 예술품 수집광이었다.

히틀러와 제 2인자 독일 공군 원수 괴링은  정복지들의 수많은 예술품들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베르히스가르텐 별장 개인 소장고로 약탈해갔다.

하지만 무수한 걸작품들을 그대로 다 약탈해갈수는 없었다.


   대다수의 루브르 예술품들은 히틀러가 가져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가져 가지 못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독일군들이 파리를 점령했을 때엔 이미 루브르는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밀로의 비너스상은 점령지 프랑스인들의 동요를 우려하여 그대로 둘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피난처로 옮기려고 벨트를 묶어 놓은 루브르 박물관의 비너스상 - 1939년 9월

 

 

 

베르사이유의 디아나(Diana of Versaille) - 1939년 9월

 

아르테미스 Artemis a la biche, dite "Diane de Versailles" 사냥의 여신으로서 Apollo의 누이동생

로마 신화의 디아나(Diana)에 해당

 

 

 

아르테미스와 암사슴 조각상 뒤의 독일 룬트슈테트 - 1940년 10월

 

 

 

루브르 박물관 비너스상 앞의  독일 룬트슈테트 - 1940년 10월 

 

 

 

 

 

 

루브르 박물관에서 피난처로 옮겨지는 니케 여신상

 

전쟁이 발발하고 독일군들이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를 공략하자,

루브르의 박물관장은 직원들을 모두 불러모으고 박물관의 모든 전시품들을 대피시킬 것을 명령한다.

사실 박물관으로선 전시나 비상시에 전시품들을 대피시키는 프로그램들을 항상 준비하고 있으며,

그 때에도 이미 여러 차레 가상 훈련을 했던 터라 박물관의 직원들을 비교적 신속한 대응태세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박물관의 모든 직원들뿐 아니라 자원봉사를 지원한 시민들까지 합세하여

 순식간에 거대한 포장공장으로 변한 루브르,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작업은 사모트라케의 <니케>상이었다.

 이 작품은 높은 제단 위에 올려져 있을 뿐 아니라, 하나의 조각품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약 1000여개의 조각으로 이루어진 말 그대로 <조각>품이었던 것이다.

그 작품을 겨우 무사히 내리고 포장할 때에 담당 큐레이터는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다시 설치할 때는 절대 쳐다보지 않을 거야.>

이렇게 포장된 작품들은 트럭들에 실려 피난행렬과 함께 파리를 떠났고

남프랑스의 여러 성들에 나누어 숨겨지게 된다.

그리고 예술품들이 보관된 각 성마다 담당 큐레이터들과 그 가족들이 함께 거주하며 예술작품들을 보살폈다.

 

 

 

 상자속에 넣어진 루브르 박물관의 예술품들 - 1943년 3월 31일 

 

 

파리를 점령한 나찌는 루브르의 작품들이 이미 지방의 여러 성들로 분산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적극적으로 그것들을 찾아 다니지는 못했다.

 왜냐면, 비록 항복을 받긴 했지만, 프랑스 국토 전체에 대한 독일의 장악력은 한계가 있었고,

특히 프랑스의 국가적 재산을 약탈하는 것은 잠재된 프랑스 국민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히틀러도 두려워할만한 것이었다.

사실 프랑스 국민들의 끈질긴 저항정신과 특히 문화재에 대한 애착은 히틀러도 잘 알고 있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혁명을 통해 자신들의 왕을 끌어내리고 처형한 것이 프랑스 민중들이었다.

 또 프랑스 혁명의 진행 중에 사방에서 밀려오는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영국의 협공을 막아 낸 것도

민중들의 자발적 참여로 구성된 프랑스 군대였다.

내부적으로 곳곳에서 혁명 반대세력들의 저항에 대응하면서도,

또 전선으로 몰려가 나라를 지킨 것이 프랑스 민중의 힘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 프랑스와 프러시아의 보불전쟁 당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러시아군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3세를 사로잡고도 결코 파리를 직접 공격하거나

프랑스 전체를 도발하지 않았다.

비스마르크도 결코 프랑스 전체 민중의 저항과 맞닥뜨리는 것을 원치는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나찌는 루브르의 작품들을 찾는 대신, 유태인들이 소유하고 있던

갤러리나 저택들을 몰수하여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예술품들을 독일로 가져갔다.

특히 나찌의 2인자였던 괴링 역시 히틀러 못지 않은 예술품 수집광으로서,

 히틀러와 나눠먹기를 하듯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수많은 걸작품들을 개인적으로 쓸어갔다.

 전쟁 후에 그 중 수많은 작품들이 다시 주인은 찾거나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 졌지만,

 완전히 사라져 버린 작품들도 상당수며,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도 소유권 분쟁에 휘말려 있는 작품들도 여전히 많다.

인류 역사상 나치만큼 조직적이고 거대한 절도 집단은 없었던 샘이며,

 또 한 시기에 이토록 많은 인류의 유산들이 사라진 적도 유사이래 처음이었다.

어쨌거나, 이처럼 루브르 박물관 측의 철저한 대비와 발빠른 대응으로 인해

 루브르의 귀중한 예술품들, 아니 인류의 소중한 유산들 거의 대부분이 무사하게 지켜져,

오늘날까지 수많은 관광객들을 매료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연합군에 의해 상보르 산성으로 비밀리에 피신되었다가

 

루브르 박물관으로 다시 돌아온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 1945년

 

 

 

 

루브르 박물관으로 다시 돌아온 예술품들 - 1945년

 

 

 

사냥의 신 아르테미스와 암사슴

 

 

 

니케(그리스어: Νίκη)는 그리스 신화의 정복과 승리의 여신이다.

로마 신화의 빅토리아에 해당한다.

티탄 신족의 하나인 팔라스와 저승에 흐르는 강의 여신 스틱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질투 또는 경쟁심을 뜻하는 젤로스와 힘을 뜻하는 크라토스, 폭력을 뜻하는 비아의 남매이다.

전쟁의 여신이기도 한 아테나와 관계가 깊고 모습도 비슷하지만,

 단독으로 그려질 때는 날개가 달려 있고 종려나무(실제로는 대추야자) 잎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파르테논신전에서는 아테나가 팔에 니케를 올려 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기간테스와 올림포스 신들의 전쟁인 기간토마키아에서 제우스 편에 선 탓에

종종 제우스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나오기도 한다.

아크로폴리스에 니케 신전의 유적이 남아 있으며, 미술 작품으로는 파이오니오스가 만든 《니케상》과

 사모트라케섬에서 발견된 《사모트라케의 니케》,

아크로폴리스미술관의 《샌들을 벗는 니케》 등이 유명하다

미국의 스포츠용품업체 나이키와 미국 육군의 나이키 미사일은 니케의 이름을 딴 것이다.

 

 

 

 

[모나리자] Mona Lisa - La Gioconda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이 유명한 작품은 이탈리아 플로렌스 지방의 라 조콘다 라는 귀족 부인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이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의 전형적인 초상화로 알려져 있으며, 초상화 속 인물의 오묘한 미소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은다.

지오콘다는 누구인가?
이태리어로 지오콘다란 말의 뜻은 "즐거운 여인" 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다 빈치의 모델이 된 이 여인은 과연 누구인가?
피렌체의 은행가의 부인인 프란체스코 델 지오콘도,

이자벨라 테스터, 프랑카빌라의 공작 부인?.... 미스터리다.
심지어 어떤이는 이 모델이 다 빈치 자신이라고도 한다.

이 작품은 루브르에서 가장 귀중한 작품으로 방탄유리 안에서 잘 보호되고 있다.
매일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이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감탄한다.

왜 그럴까? 왜 그렇게 유명할까? 도대체 어떤 점 때문일까?
모나리자는 1550년 때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 그림이 완성된지 50년 후의 일로, 사람들을 이 그림을 열광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 프랑스어: Vénus de Milo, 그리스어: Αφροδίτη της Μήλου)는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조각상 가운데 하나로, 기원전 130년에서 10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과 미를 관장하는 여신인 아프로디테(로마 신화의 비너스)를

 묘사한 대리석상으로, 길이는 203cm이다.

 

밀로의 비너스는 1820년 4월 8일 당시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밀로스 섬의 농부 요르고스 켄트로타스에 의해 발견되었다.

며칠 후 프랑스 해군 장교 쥘 뒤몽 드위빌이 이 조각상의 중요성을 인식,

 터키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마르키 드 리비에르를 설득해 조각상을 구입했다.

이 조각상은 1821년 루이 18세에게 헌납되었으며, 이후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발견 당시 이 여신상은 고전기()의 거장 프락시텔레스(Praxiteles)의 원작이라고 떠들썩하였으나,

그 후 연구 결과 현재는 BC 2세기에서 BC 1세기 초에 제작되었으리라는 설이 유력하다.

품위 있는 머리부분이라든지 가슴에서 허리에 걸친 우아한 몸매의 표현에는

BC 4세기적인 조화를 보이기도 하지만, 두발()의 조각과 하반신을 덮는 옷의 표현은

분명히 헬레니즘의 특색을 나타내고, 그 고전적인 자태는 헬레니즘의 극단적인 사실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고전 양식의 부활이라는 당시의 풍조에서 태어난 걸작이다.

허리부분을 단면으로 하여 상하() 두 개의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양팔이 없다.

그 없는 부분의 복원()에 대해서는 그 제작연대와 마찬가지로

고고학자나 미술사가 사이에서 계속 많은 고찰이 있었다.

 

 

비너스상은 1820년 발굴 당시 이미 두 팔이 손상된 상태였다.

유실된  오른손은 왼쪽 다리께로 흘러내리는 옷자락을 잡고 있었으며,

또 다른  왼손은 팔을 앞으로 내밀어 제쳐져

'파리스의 심판'의 금사과를 쥐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1821년 루브르미술관에 소장된 후 두문불출의 명작으로도 유명했으며,

1964년 처음으로 세계나들이를 한 바 있다.

 

루브르의 보물 찾기' 라고 표현된 루브르의 3대 미술품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승리의 날개) 가운데 하나로

높이 204cm. 멜로스의 아프로디테(Aphrodite of Melos)라고도 한다.

 1820년 4월 8일 에게해의 밀로스섬에서 출토된 밀로의 비너스는 두 팔도 없이

비스듬히 몸을 비틀고 신비로운 미소를 짓는 여신의 모습이다.

완벽한 인체의 비율을 구현한 이 조각상은

아름다운 여성의 표상으로 여겨져 영화, 광고 등에 자주 등장한다.

헬레니즘 양식의 특징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고전적인 인체 비례에도 불구하고 지그재그로 비튼 굴곡이 강조된 인체 묘사,

성숙한 둔부, 미끄러지듯 흘러내리는 의복의 복잡한 주름 등이

 헬레니즘 특유의 관능적인 느낌을 더하고 있다.

비너스상은 1820년 발굴 당시 이미 두 팔이 손상된 상태였다.

유실된 한 손은 흘러내리는 옷자락을 잡고 있었으며,

또 다른 손은 '파리스의 심판'의 금사과를 쥐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작품으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모나리자] [밀로의“비너스]

다비드의[나폴레옹 대관식] 승리의 여신[니케 상]이다.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들은 고대그리스 및 로마 진열부,

고대 이집트문화부, 고대동방문화부, 회화부, 조각부, 공예미술부, 인쇄품 및 소묘부 등

7개 부분으로 분류되어 전시하고 있다.

  루브르박물관의 절반도 넘는 예술품과 문물들은 모두 약탈의 성격을 띤 전리품들이다.

하지만 이런 전리품들은 지금은 프랑스의 것도 아니요,

출토국가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전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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