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6.25 전쟁 Korean War

수원 화성 장안문과 북한 공산군의 T-34/85 탱크 Destroyed Hwaseong Fortress & North Korea Army T-34/85 Tank in the Suwon during the Korean War

슈트름게슈쯔 2013. 3. 12. 13:07

 

 

한국전 당시 북조선 공산 군대에 의해  문루가 파괴된 수원 화성의 정문이자 북문인 장안문과 성곽

 

파괴된 장안문의 문루와 성곽이 보이고 도로변의 전봇대에 영어로 수원이라고 적힌 팻말과 미군 GMC트럭을 볼수 있다.

 

 

 

안쪽에서 본 한국전 당시 파괴된 수원 화성의 장안문

 

 

 

파괴된 수원 화성의 장안문의 바깥쪽에 파괴되어 있는 북조선 공산군대의 소련제 T-34/85 탱크

 

수원 화성은 조선의 성군이었던 22대 임금 정조에 의해 제작되었던 한민족의 역작이자 대한민국의 대표적 문화재이다.

이러한 민족의 정기가 서린 귀중한 문화재인 수원 화성 또한 어처구니 없게도

6.25 동란 당시 북조선 공산군대가 38선을 넘어 몰고 내려온 침략의 상징이었던 

소련제 T-34/85 탱크의 포격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었다.

 

  

 

 

한국전 당시 수원 화성 장안문 앞에서 파괴된 북조선 인민군의 소련제 T-34/85 탱크위에서 노는 아이들

 

 

 

 

화성(華城)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와 장안궁에 걸쳐 있는 길이 5.4km 의 성곽이다.

1963년 토끼띠의 해에 사적 3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었다.

수원 화성은 한국 성의 구성 요소인 옹성,성문, 암문, 산대, 체성, 치성, 적대,

포대,봉수대등을 모두 갖추어 한국 성곽 건축 기술을 집대성했다고 평가된다.

 

 

 

수원 화성은 조선 후기 정조때인 1794년에 착공하여 1796년 9월 10일에 준공되었다.

기존에 화강암으로 쌓았던 방식을 버리고 벽돌로 쌓는 축성 공사에는

정약용아 고안한 거중기가 사용되었다.

수원 화성은 정조가 그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에 옮기면서 축조한 성으로

거중기,녹로등 신기재를 사용해 만들어졌다.

화성은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어 동양 성곽의 백미로 평가 받는 아름다운 성곽이다.

 

 

 

수원 화성 장안문의 야경 - 2010년 9월 14일

 




수원 화성의 장안문은 화성 4대문중 북쪽의 문으로서 정조 18년(1794년) 건축되었으며

중국의 역사에서 장안은 국가의 안녕을 상징하는 문자로 이를 정조가

북문의 이름으로 정해 태평성대를 구가한 중국 한.당의 서울이었던 장안의 영화를

화성에서 재현하려고 이름을 장안문이라 지칭하였다. 

이 문은 남쪽문인 팔달문과 함께 화성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한국전 6.25전쟁 때 전화로 문루가 완전히 불타버리고

구조물도 많이 파손된 것을 1976년 옛모습대로 복원하였다.

홍예문의 구조는 높이 6.47m, 너비 5.57m이고 홍예 위에 2층으로 된

누각이 설치된 전형적인 성문 구조이다.

문루의 높이 는 13.5m이고, 정면의 너비가 18m, 측면너비가 9m이다

장안문의 바깥에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반으로 포개어진 독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북옹성의 정면 초루는 축성당시에는 없었으나 후에 세운 것이다.

옹성은 전벽돌로 쌓았는데 높이가 6.6m에 바깥 둘레는 67.5m이다.

이 옹성에 현안 16개를 뚫었으며 안쪽에는 누조 8개가 있고

옹성의 중앙에 문을 내어 장안문과 마주 대하게 하였다.

문의 좌우에는 북옹성을 공격하는 적을 격퇴할 수 있도록 적대가 있으며

적대는 대한민국의 다른 성곽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귀중한 시설이다.




 

 

photo from : analess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