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세계 전차

T-55 탱크의 지중해 알렉산드리아 해변 바캉스[Egyptian T-55 tank the Mediterranean Sea Alexandria beach Vacance]

슈트름게슈쯔 2013. 6. 22. 10:45

 

 

미국과 이집트의 합동 군사 훈련중 미국의 LCU 상륙정 (LCU-1644)에 실려

 

알렉산드리아 해변으로 상륙하는 이집트군의 소련제 T-55 탱크 - 1985년 8월 8일

 

 

 

미국의 LCU 상륙정 (LCU-1644)에서 두번째로 알렉산드리아 해변에 상륙하는 이집트군의 소련제 T-55 전차

 

 

 

지중해 알렉산드리아 해변의 시원한 탱크 바캉스 - 1985년 8월 8일

 

 

 

1978년 미국 캠프 데이비스에서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단독평화교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의 모임이 열렸다.

그 모임은 이름하여 캠프 데이비스 협정이었다.

 당시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은 중동 평화를 위해 그 모임을 주선하여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를 미국으로 초청하였던 것이다.

 이 모임 결과 앞으로 두 나라간 회담을 지속하기로 협정을 맺게 되며

이집트와 이스라엘 두 나라는 1979년 3월 26일 평화협정을 맺었던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은 국가는 이집트가 유일한 국가였다.

카터 대통령은 중동평화를 위한 틀을 구축시키기 위하여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과 이스라엘 베긴 총리를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나 조치를 취한것이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양국의 정상들은 그 협정 동의서 아래에서 양 국가의 존재와 권리를 각각 인정하였다.

1975년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나이 반도의 서부를 이미 반환한 상태였으며,

이 회담에서 협정을 이끌어 내면서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미국으로 부터 대규모의 경제적 지원과 군사적 협력을 약속받았다.

비로소 어제의 적이었던 중동의 두 국가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미국에 의해 양국의 새로운 평화적 관계를 확실히 하는 조약을 맺었다.

 그일이 있은 후 수많은 아랍 세계의 지도자들은 캠프데이비드 협정에

강력히 반대하였으며 이집트는 아랍 연맹에서 제명당하였다.

그러나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은 미국  카터 대통령의 중재로 1978년 캠프데이비드 협정에 조인하여

이스라엘로부 터 빼앗겼던 영토인 시나이 반도를 돌려받고,

 1979년에는 미국 워싱턴 에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다.

그러한 그의 평화에 대한 공헌으로 이스라엘의 메나헴 베긴(Menachem Begin) 총리와 함께

 1978년에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그러나 아랍 국가들은 사다트의 이스라엘과 평화 정책에 비난·반대하면서

그를 아랍 세계의 배반자로 여기면서 이집트를 따돌리기 시작하였다

1981년 10월 6일 카이로 근교의 나스루에서 수에즈 운하 도하 기념 군사 퍼레이드 중

 과격 이슬람 원리주의자 칼리드 이스람불리와 다른 2명의 공범의 총에 맞아 암살당했다.

당시 사다트 대통령은 1발의 수류탄과 37발의 AK 소총 실탄에 피격되어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닉슨,포드,카터 전 미국 대통령들과 서방 국가들의 정상들이 참석하였으나,

그를 저지한 아랍 국가들의 정상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 이집트는 확실한 친미파 국가로 탈변되어 그 이전까지 소련에서

지속적으로 무기를 도입하던 노선을 완전히 미국으로 바꿔 버리게 된다.

 

사다트 대통령의 후임으로 이집트의 정권을 잡은 무바라크 대통령은

나세르 대통령 시절부터 전투기와 지상군의 육상병기와 미사일등의 로켓 무기와 전차를

소련에서 구입하는 국가였던 이집트는 이제 소련제 T-55 전차나 T-62 전차가  아닌 미국에서
 미제 전차  M60A1 전차를 그제부터 수입하게 된다.

그것은 소련과 서방세계의 군축 협약에 의해 시행되는 미국의 재래식 병기 감축에 의해 파생된 결과였다.

그래서 이집트는 1979년부터 서독에 주둔되어 있던 M60A1 전차 700대 수입으로 시작하여

1992년, 2001년 및 2002년 미국으로부터 나머지격의 M60A3 전차를 도입하여 모두 1,716대를 보유하게 된다..

 

 

photo from : fa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