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

한국 석유 곤로[Korea kerosene Konro]

슈트름게슈쯔 2013. 8. 27. 12:43

 

 

1970년대 후지카 곤로 광고의 탤런트 홍세미 - 1976년 5월 19일

 

 

 

 

 

1970년대 석유 곤로는 연탄 화덕을 대신하는 가정용 조리기구였다.

어쩌다 집에서 연탄불이 꺼졌을때 곤로는 번개탄을 사용하여

연탄을 다시 피워 기다리는 시간을 벌어 주었다. 

석유  곤로의 심지에 성냥불을 붙이면 검은 그을음 연기가 약간 올라오면서 석유 냄새가 났다.

이어서 심지 전체로 퍼져가는 주황색의 불꽃은 곧이어 파란색 불꽃을 내며 화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양은 냄비에 라면을 넣고 끓이면 그 석유 냄새는 옅게 라면속으로 스며 들어 갔다.

곤로 라면의 냄새는 석유 버너에서 끓인 라면의 냄새와는 또 달랐다.

곤로 라면을 먹어본 사람들은 석유 기름의 냄새가 연하게 퍼져 나오는

그 시절 곤로 라면의 맛을 결코 잊을수가  없을 것이다.

 

 

 

 

추억의 70년대 석유 곤로

 

 

 

요즘 나온 추억의 석유곤로  

 

 

대한민국 소방법에 의해서 가스레인지를 사용하지 못하는

 노점상 등의 사람들은 아직도 석유곤로를 사용한다.

 

 

곤로는 일본말이다.

일본어로 석유곤로를 세규곤로(石油焜爐,こんろ)라 부른다.

석유 곤로는 한국어로 석유 화로나 석유 풍로라고 불러야 하지만

외래어로서 한국 사회에서는 예전부터 그대로 곤로라고 지칭한다.

하지만 곤로라는 단어는 이제 보통 사람들의 입에서 거의 오르내리지 않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떤이에게 곤로라는 단어는 몇년내지 십수년동안

전혀 입밖으로 발음할 필요가 없이 사용치 않는 단어일수도 있다.

학창시절 학생들의 별명은 일반적으로 그 학생의 이름 글자에 의하여 지어지거나

생긴 얼굴의 생김새및 신체적 특징이나 그 학생의 특별한 성질및 버릇등에 의해서 지어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 학생의 이름에 의해 별명이 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들어 우동구라는 이름과 유우동이란 이름을 가진 학생들은  우동으로 별명이 지어지기 십상이며

장세면이란 학생은 짜장면 김치근이란 학생은 김치국및 김주수란 이름은 주스라고 별명이 지어질수가 있다.

그리고 유명인의 이름이 먼저 알려지고 난뒤에 그와 비슷한 이름을 가졌으면 

전자의 유명인물이 그 사람의 별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들어 이름이 박정일이나 손정일등 성은 다르지만 이름이

워낙 유명한 사람이었던 관계로 별명이 김정일이 되는 경우도 있고

이름이 임선동인데 별명이 임선동렬이 되는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1970,80년대의 추억의 풍물거리 물건들을 어쩌다 보면 가끔 석유곤로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럴때면 곤로에 얽힌 2가지의 추억이 떠오르게 된다.

한가지는 학창 시절 박희순과 여름 캠핑 여행을 준비할 당시 

재래시장에서 구입할려고 했던 미니 석유 곤로의 추억이다.

학창시절의 여름 방학때 석유 버너를 어떤 친구에게 빌려주고 난뒤 

그 석유 버너가 고장이 나버려 더 이상 사용 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석유 버너를 새로 장만해 볼려고도 했지만 당시로서

여름 캠핑 비용으로 모아둔 돈에 상당하는 또 다른 비용으로

25000원 가격의 새 석유 버너 비용은 학생에게 만만치가 않았었다.

그러했던 연유로 야외에서 꼭 필요한 취사도구인 석유 버너를 다시 사기가 돈이 아까워  

부림시장 닭전 밑 목물전 노점에서 파는 8000원 짜리 간이 석유 곤로를 살려다 말았던 추억이 있다.

그 곳에서 팔던 곤로는 과거 가정에서 사용하던 곤로에 비해

부피가 3분의 1크기 만한 작은 미니 곤로였지만 

전기밥솥만한 크기의 곤로를 배낭속에 넣고 다니기에는 좀 그랬기에 그냥 포기 하고 말았었다.

또 다른 곤로의 추억중 한가지는 필자와는 아무런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지인의 동창생들중에서 별명이 곤로라는 사람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것은 많고 많은 별명을 가진 대한민국의 사람들중에서 하필이면

그 별명이 곤로라는 대단히 우스운 별명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성호교를 졸업하고 창원중학교에 입학한 성호교 학생들은

3반의 감익규와 김성철과 5반의 최봉근과 전영섭및 2반의 이경준과

1반의 문용호와 최동섭및 곽경렬등 8명이었다.

세월이 지난후 추산동 곽경렬의 집에서 중학교 졸업앨범을 보았는데

졸업생들중에는 대한민국 여느 학생들의 이름이 그러하듯이 그중에는 웃기는 이름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별로 웃기는 이름같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장근로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살며시 웃고 있었는데 사진 옆에는 볼펜 글씨로 별명이 곤로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 인물의 사진을 보니 얼굴의 면적이 넓어 충분히 그렇게 불릴만 했다.

학창시절 필자의 주변에는 곤로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그 별명은 간접 경험속의 인물이었지만 이름이 곤로와 비슷하다는  이유 만으로 곤로가 별명이 된 사람을 볼수있었다.

근로라는 이름이 결코 천박하게 느껴지는 이름이 아니었다.

하지만 불과 관련된 별명이지만 곤로라는 단어만 들어도 석유 냄새가 연신 풍기는  

별명이었기에 그 사람에게서 결코 귀인과 같은 풍모를 느낄수가 없었다.

세상 사람들중에는 자기 자신의 별명이 물과 관련된 사람도 있고 불과 관련된 별명을 가진자도 있다.

불과 관련된 별명을 가진 사람중에서 대표적으로 유명했던 사람이 한 사람 있었다.

1980년대 중반기 한국 복싱계에 158cm의 작은 키에 트레이드마크였던

콧수염을 휘날리며 거침없이 상대를 몰아 붙이던 한명의 파이터가 있었다.

그 사람의 별명은 라이터 돌이었다.

그 별명은 마치 라이터 돌처럼  불꽃이 튄다는 강인함을 나타내어 준다.

라이터 돌은 다름아닌  88 서울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 김광선 선수의 별명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여러가지 성씨룰 가진 한국인들은 자식들의 이름을 지을때 영험이 있는 이에게 작명을 부탁하기도 한다. 

아니면 그 가문의 족보에서 항렬에 알맞는 이름짓기용 한자(漢字)명 글자 한자, 한자를  선별하여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성의 뒤 중간과 끝에 이름으로 붙여 짓기도 한다. 

그렇게 지어진  자기 자신의 이름은 상대방 다수에게 불리우는 그대로의 발음으로 

다가가서 인식되어 지며 또한 그 이름으로 인하여 파생된 별명 또한 상대방 다수에게 그대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래서 옛날 같았으면 난세에 완전히 팔자가 달라질 대운의 이름을 가진자가 

현재 시대와 그 운세가 걸맞지 않아서 그와는 정반대의 운명으로 작용하는 경우를 종종 볼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