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카미카제의 미 해군 엔터프라이즈 항모 공격[Pacific War during uss enterprise cv-6 attacked by the japanese kamikaze]

슈트름게슈쯔 2014. 8. 11. 16:45



태평양전쟁  솔로몬 해전 당시 미 해군 엔터프라이즈 항모의 갑판에서 폭발되는 일본 해군 항공기가 투하시킨  폭탄 - 1942년 8월 24일 


이 공격으로 입은 미 해군 항모 엔터프라이즈는 피해는 경미한 형태였다.





태평양전쟁 산타 크루즈 해전 당시 일본 해군 항공기의 공격을 받은 미 해군 항모 엔터프라이즈 - 1942년 10월 26일 









일본 카미카제 특공기의 공격을 받은 미 해군 엔터프라이즈 항모  - 1945년 3월 20일 








일본 카미카제 특공기 2대의 공격을 받은 미 해군 엔터프라이즈 항모 - 1945년 4월 11일 







오키나와 해역에서 일본 카미카제 특공기의 자살공격으로 인한  폭발후 화재를 진압시키는 미 해군 엔터프라이즈의 수병들 - 1945년 4월 20일  





일본 카미카제 특공기의 공격을 받은 후 화재를 진압시키는 미 해군 엔터프라이즈의 수병들  - 1945년 5월 14일 










미 해군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CV-6)은 태평양 전쟁이라는 세계 최대의 해상 전쟁을 

홀로 수행한 미 해군의 신화같은 존재이자 기적과도 같은 행운함으로 우수한 지휘관과  

병력의 환상적인 조화가 만들어낸 해전사의 전설로 남게된 진정한 불침함이었다.

또한 엔터프라이즈(CV-6)SMS 역사상 가장 유명한 항공모함이자,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과를 올린 군함이었다.

세계의 여기저기에서 대형함들에 붙여지는 "엔터프라이즈" 라는 이름을 가진 배들의 

모티브는 거의 태평양전쟁 당시 미해군의 엔터프라이즈인것이다. 

엔터프라이즈 항공모함은 그야말로 제2차 세계대전 미 해군 그 자체를 상징하는 미국의 자존심이었다.  

미 해군의 항모 엔터프라이즈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미국 해군이 보유했던 

항모 7척(렉싱턴, 새러토가, 요크타운, 호넷, 와스프, 엔터프라이즈, 레인저) 중 

새러토가, 레인저와 함께 종전까지 살아남은 세 항공모함 중 하나로, 

회색 유령, 빅 E, 럭키 E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는 2차 대전 최강의 항모였다.

일본 해군 쪽에서 엔터프라이즈에 비견될 만한 행운함은 구축함 유키카제나 

항공모함 쇼카쿠급 자매 정도이지만 미 해군의 엔터프라이즈 항모는

 자신의 생존은 물론이거니와 연이은 격전에 참가하면서 혈전을 거친후 

 전쟁의 양상을 바꿔버렸고,끝끝내 살아남았다.

 함명인 엔터프라이즈의 뜻은 진취, 적극적으로 나아가서 일을 이룩함이라는 뜻으로 

함명에 전혀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함생을 살았던 위대한 배였다.  

이해가 안되는 사람을 위해 비유를 들자면 명량 해전 당시의 이순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거꾸로 이순신의 업적을 이해 못하는 미국인이 있다면 

1942년 남태평양의 엔터프라이즈가 일본 해군의 거센 공격을 받았음에도 

침몰되지 않고 대활약을 한 사실로  납득을 시킬 수 있다.



1934년 7월 16일 미 항모 엔터프라이즈는 뉴포트 뉴스 조선소에서 기공되고 

1936년 10월 3일 진수되어 1938년 5월 12일에 취역했다.

 이후 자매함 요크타운은 대서양함대로 그리고 엔터프라이즈는 선배 렉싱턴과 새러토가가 있는

 태평양함대에 배속되어 진주만을 모항으로 했으며, 항공기 수송과 훈련에 전념하게 된다.  

1941년 12월 2일 웨이크 섬에 비행기를 배달하고 돌아오던 엔터프라이즈는 진주만으로 돌아온다. 

원래대로라면 12월 6일에 입항했어야 하는데, 오다가 폭풍을 만나 일정이 하루 늦어진다.

 그리고 일본은 12월 7일에 진주만 공습을 감행했고, 진주만은 아비규환의 처참한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일본군의 공습소식을 들은 엔터프라이즈는 서쪽에서 진주만으로 접근중이었고, 

남쪽에서 일본 함대를 찾아 공격하는 임무를 받았지만 일본 함대는 북서쪽에 있어서 허탕을 친다. 

어쨌든 엔터프라이즈가 진주만에 없었던 것은 일본군에게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가 되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2월 10일 엔터프라이즈는 일본 잠수함 한 척을 격침했고 이는 미국이 일본을 상대로 처음 격침시킨 적함이었다.

..그렇지만 응급수리된 한 척의 항공모함이 남아있었다." - 해군소장 토마스

 (조선의 이순신 장군을 인용한다면 신에게는 아직 열 두척의 배가 있습니다)  

 2월 1일, 엔터프라이즈가 포함된 함대는 일본군이 점령한 길버트 제도를 기습하여 적함 3척을 격침한다. 

2월 24일에는 웨이크 섬을 공격하고, 3월 4일 마커스 섬에 타격을 가한다.  

4월 8일, 엔터프라이즈는 항모 호넷과 함께 비밀임무를 위해 출동한다. 

그러나 4월 18일에 일본군이 그들을 발견했고, 여기서 엔터프라이즈 함모의 전투기가 

항공엄호를 담당하는 가운데 호넷이 배에 탑재한 B-25 미첼 폭격기 편대를 발진시킨다. 

이들이 바로 두리틀 특공대였고, 일본은 대낮에 수도 도쿄를 폭격당하면서도 

한 대의 미 공군 폭격기도 격추 시키지 못하는 치욕을 당한다. 

이 수치스런 사태에 일본군은 분노하여 미드웨이를 대파시키기 위해 연합함대를 출동시킨다. 

 5월 25일에 진주만을 출격한 엔터프라이즈는 미 해군의 주력으로서

 나구모 제독의 항모전단과 격돌하고, 미드웨이 해전에서 진주만의 참패를 설욕한다. 

나구모 제독은 항모 4척을 모두 잃었고, 이것으로 미국은 전세를 역전시킬 발판을 마련한다. 

그렇지만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은 이 전투에서 자매함인 요크타운을 잃게되었다. 

 대승리를 거둔 엔터프라이즈는 7월 15일에 솔로몬 제도를 향해 출격하여

 8월 동부 솔로몬 해전(2차 솔로몬 해전)에 참가했고 

이때 3발의 명중탄을 맞았지만 무사히 돌아와서 수리를 끝내고 다시 출격한다. 

 그러나 10월 26일의 산타크루즈 해전, 엔터프라이즈는 또다시 자매함인 호넷을 잃게되었고 

그 자신도 3발의 명중탄을 맞아 전선을 이탈한다. 

당시 어뢰를 맞아 수리를 위해 전선에서 이탈한 사라토가와 대서양에서 활동 중인

 레인저를 제외하면 미 해군에는 항공모함이 하나도 남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 일본군은 엔터프라이즈를 붙잡아서 침몰시키려고 했으나, 

때마침 열대성 폭우인 스콜이 쏟아져서 엔터프라이즈를 찾지 못했다. 

일본군으로서는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었다. 

미 한모 호넷은 일본군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고 15km 떨어진 엔터프라이즈에서도 

호넷 항모의 피해를 육안으로 구분할수 있었다.

그리고 호넷에만 공격이 집중된 후에야 일본기 한대가 엔터프라이즈를 발견했다.

그 소식에 놀란 나구모는 바로 엔터프라이즈를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 역사상 최악의 방공망 대 전투기의 싸움이 시작된다.

일본 해군기의 폭탄 세발을 얻어맞았지만 엔터프라이즈는 끝끝내 어뢰 아홉발을 회피하고, 공격을 버티며 살아남았다. 

하지만 피해가 컸기에 어쩔 수 없이 수리를 위해 돌아가야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리고 일본군은 이를 위해 베테랑 파일럿을 또다시 대량으로 희생시켜야만 되었다. 

결국 미드웨이 해전에서 자매함 요크타운이 격침당하고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자매함 호넷 역시 격침당하며

 이제 3척이었던 요크타운급 자매중 엔터프라이즈 홀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엔터프라이즈가 사라지자 일본군은 기고만장했고, 과달카날은 함락의 위기에 직면한다. 

그러나 진주만으로 돌아가지 않고 근처에서 응급수리를 하던 엔터프라이즈가 

다시 나타나 과달카날 해전(3차 솔로몬 해전)에 참가한다.  

이리하여 엔터프라이즈는 1942년 한 해 동안 태평양에서 실질적으로 활동 가능한 

유일한 미해군 정규항모로 혼자서 일본해군의 공세를 다 감당해낸다.

 당시 엔터프라이즈의 한 정비사는 함교 벽에 흰색 페인트로 "Enterprise VS Japan"이라고

 글씨를 휘갈겨서 당시의 심정을 표현했다고 한다.  

진주만에 예정대로 입항했더라면, 일본 뇌격기들의 어뢰 공격으로 그대로 침몰해 버렸을 배였지만 

엔터프라이즈는 전쟁이 시작될 때부터 엄청난 행운으로 계속해서 살아남았던 것이다. 

1943년 5월 27일, 엔터프라이즈는 태평양전쟁의 대혈전를 끝내고 진주만으로 귀환했고, 

대통령은 니미츠 제독에게 감사장을 수여한다. 

이것은 미군 항공모함 중에서는 사상 최초였다.  

이후 엔터프라이즈는 대대적인 수리를 받은 후 11월에 전선으로 복귀한다. 

태평양 전선의 길버트 제도와 마샬 제도에서 활약한 후 12월 9일에 진주만으로 귀환한다.  

1944년 1월에는 마샬 제도 상륙작전을 지원하고, 2월에는 트랙 섬을 공습하는 등 

상륙작전 지원과 양동공격 임무를 맡았다. 

이후에도 엔터프라이즈는 비스마르크 제도, 케롤라인 제도, 팔라우 제도, 뉴기니 제도 등

 태평양 일대를 돌아다니며 상륙작전을 지원했으며, 필리핀 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소탕 작전에도 참가한다.  

그러나 필리핀 해 해전 종료 직후, 해전때보다도 큰 위기가 닥쳐왔는데

 돌아오는 과정에서 시간이 너무 늦어 파일럿들이 밤바다를 항해하여 돌아와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파일럿들을 잃은 항모도 꽤 되었고 워낙 절망적인 상황이라 

당시 파일럿중 한명은 늙어서 그 일에 대해 인터뷰를 할 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엔터프라이즈가 포함된 함대를 지휘하던 마크 미처 제독은 

함대의 목숨을 걸고 "전 함은 빛을 밝혀라"라는 도박을 감행한다. 

야간에 함재기도 없는 항공모함, 즉 호위 없는 함대가 떡하니 불을 밝힌다는게 뭘 의미하는지 

가장 잘 알면서도 파일럿들을 위해 함대의 목숨을 걸고 야간등화를 켜라고 명한것이었다. 

이런 마크 미처 제독의 목숨을 건 도박은 멋지게 성공하여 

이날도 엔터프라이즈에서 돌아오지 못한 파일럿은 단 한명뿐이었다. 

그리고 그 파일럿도 22일에 아이스크림 25갤런과 맞바꿔 구조된다. 

아이스크림이 언급된 이유는 마크 미처 제독은 구조를 장려하기 위해 

'파일럿 구조해오는 배에는 아이스크림을 더 배급하겠음!'이라고 선언했었기 때문이었다. 

7월에 엔터프라이즈는 휴식을 위해 진주만으로 돌아갔다.  

8월 24일에 재출격한 엔터프라이즈는 케롤라인 제도, 오가사와라 열도,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을 공격하고 레이테 만 해전에도 참가했다. 

 12월 24일에는 야간전투기 훈련도 시작했다. 

 1945년  1월에 출격한 엔터프라이즈는 일본과 인도네시아를 잇는 교통로를 자르고

 이오지마 전투에 참가한 아군을 지원한다. 

이 무렵 일본군의 공격으로 약간의 손상을 입었고, 아군의 오발로 피격을 당하기도 했다.  

4월 5일에 엔터프라이즈는 오키나와 전투에 참가한 미군을 지원하기 위해 출격한다. 

작전을 수행하던 엔터프라이즈는 5월 14일에 26기의 일본항공기의 내습을 받지만, 

6기를 대공포화로 격추시키고 19기는 상공초계기에 의해 격추되었다.  

하지만 도미야스 슌스케(富安俊助) 중위의 1기만이 집중포화를 피해 

구름 속에 몸을 감춘 후 시시각각으로 구름사이 얼굴을 비친 엔터프라이즈의 위치를 확인한 후 살아 남았다.

 그리고 오전 6시 56분, 이 1대의 기체는 엔터프라이즈를 향해 자살돌격을 감행했다. 

집중포화를 받았지만 함 바로 위에서 180도 좌측으로 선회하여 

배면비행의 상태로 급강하해 전방 함재기 엘리베이터 후방에 돌입했다. 

덤으로 돌입순간에 폭탄을 기체와 분리해서 폭탄이 격납고에 직격하도록 하는 등 

피해면적을 확산시키는 재주까지 부렸다. 

한마디로 말해서 카미카제를 안하고도 훌륭하게 적의 대형 군함을 

성공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엘리트급 조종사가 직접 자살공격을 한 셈이었다.

그것은 미군 말대로 일본군이 3년에 걸쳐 손대지 못한 군함을 혼자서 손댔으니까 대단한 위업이기는 했다. 

 이 공격으로 엔터프라이즈는 400피트 상공까지 연기가 피어오를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

엔터프라이드  전방의 엘리베이터는 120m 상공까지 솟아올랐다가 떨어져서 불탔으며

 전사자 12명을 포함한 사상자 48명을 내면서 함 자체도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보통 이러한 피해를 입으면 모든 추진력을 잃어버리고 불타면서 떠돌다가 침몰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 해전의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엔터프라이즈는 

불과 30분만에 화재를 진압하고 비행갑판을 정리해서 자력운항이 가능해졌다.

 그것은 미 해군 장병들의 필사적인 작업이었다.

그러나 비행갑판의 파손 및 구조손상을 대대적으로 수리할 필요가 있어서 

제대로 된 수리를 위해 본국으로 귀환한 뒤 수리를 마치고 전장으로 되돌아오려고 하던 중 전쟁은 종결되어 버렸다. 

  무릇 태평양 전쟁이란  미 해군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의 항로와 같았다. 

태평양 전쟁에서 적어도 해전에 관해서는 산호해 해전 정도를 제외하고 

엔터프라이즈가 참가하지 않은 전투 중 주요 해전은 없었다. 

엔터프라이즈는 경순양함, 구축함, 상륙함등의 승무원들을 수중고혼으로 만들어 버렸지만 

 지상지원이나 항공기지 공습등에서도 막대한 전과를 올렸다.

1941년 12월 7일부터 1945년 5월 14일까지 함 자체의 대공포와 항공기로 911대의 적기를 격추하고, 

71척의 적함을 격침시켰으며, 최소한 192척의 적함을 파괴하거나 피해를 입혔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일본, 영국을 제외하고 엔터프라이즈가 혼자서 기록한 전과보다 

더 큰 해군 전력을 보유한 나라는 없었으며 

인류역사상 이보다 더 큰 전과를 기록한 군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해군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CV-6)의 연표



1941년   12월 - 잠수함 I-70 격침 - 미국이 올린 첫 격침성과.  




1942년   2월 - 마샬, 길버트 군도 공습, 웨이크섬 공습 

3월 - 미나미토리섬 공격

 4월 - 두리틀 특공대 참가

 6월 - 미드웨이 해전- 항공모함 아카기, 항공모함 카가, 항공모함 히류(공동), 중순양함 미쿠마 격침 

8월 - 과달카날 전투, 동부 솔로몬 해전 - 일본 항모의 공습에 3발의 폭탄을 맞고 

조향 기능이 마비되어 아군 구축함에 충돌할 뻔하는 등 여러 위기가 있었다. 

이 폭발로 인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호흡보조기 까지 투입해가면서

 40분만에 조타장치를 수리시켰다.

 게다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조타장치가 고장났지만 그탓에 엔터프라이즈는 길을 잃고 헤멨고 

그결과 2차 공격대가 엔터프라이즈를 찾지 못했다. 

10월 - 산타크루즈 해전- 항공모함 즈이호 중파. 

엔터프라이즈는 2발의 폭탄을 맞고 9발의 어뢰와 불덩이가 된

 아군 구축함을 회피하는 등 분전하였으나 

즈이호 중파와 전투기들 격추 외엔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빈사 상태에 빠진 자매함 

호넷을 남겨 두고 전장에서 이탈하게 된다. 

11월 - 과달카날 해전 - 전함 히에이를 어뢰로 타격, 중순양함 키누가사 격침, 

중순양함 초카이 중파, 중순양함 마야 중파, 경순양함 이스즈 대파, 

헨더슨 비행장 항공대와 그외 지상기지 소속 비행대와 함께 수송선단 괴멸시킴. 

완전히 수리되지 않아 착함능력이 불완전했던 엔터프라이즈는 

헨더슨 비행장에 함재기를 파견하는 식으로 전투를 수행함.  




1943년  1월 - 렌넬 섬 해전 참가 

2월 - 에스피리투 산토 섬에 기항 하여 수리와 휴식을 취했다. 

5월 - 진주만으로 귀환하여 신규 항공대 훈련에 전념하고 있던 엔터프라이즈는

 항공모함으로서는 최초로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음. 

7월 - 진주만에서 출발하여 워싱턴 주 프레머톤의 퓨젯 사운드 해군공창에 들어가

 11월까지 수리와 대규모 개장을 받았다. 

11월 - 길버트 군도 공략, 타라와 전투 참가. 

12월 - 마샬 군도 환초 공습 




 1944년   1월 마샬 군도 환초 공략 지원 2월 트럭 섬 공략,

 마샬 군도 잘루이트 환초 공습 - 순양함 카토리 격침(공동)

 3월 팔라우 섬 공습, 울시 환초 공습 

4월 뉴기니 홀랜디어 공략지원, 트럭섬 재공습 

6월 사이판 전투, 필리핀 해 해전 - 항공모함 히요 격침(공동) 

8월 오가사와라 제도 공략 9월 펠랄리우 전투 참가 

10월 오키나와 공습, 대만공습 

11월 레이테 만 해전 - 전함 무사시 격침(공동), 항공모함 즈이호 격침, 중순양함 토네 대파   





1945년   1월 - 홍콩 공습

 2월 - 이오지마 전투 참가, 

도쿄 대공습 을 위해 도쿄 주변 항공기지를 공습 

4월 - 오키나와 전투 

5월 - 규슈 공습, 카미카제 공격으로 인해 피격 

본국에 귀환해 수리중 종전을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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