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프라하 거리에 전시되었던 하이드리히 암살에 사용된 자전거[WW2 Prague Street Bicycle used Reinhard Heydrich carry out an assassination]

슈트름게슈쯔 2014. 8. 13. 12:11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체코 보헤미아-모라비아 총독이었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 1941년 






하이드리히 암살 당시 영국 특공대 대원 얀 쿠비츠와 요제프 가베크의 거사후 프라하 거리에 버려두었던 자전거와 


요셉이 스탠 기관단총울 감추었던 레인코트와 수류탄을 감추었던 가죽 가방 


처음에 영국 특공대에 의해 암살이 실행되었던것을 몰랐던 독일군은 

하이드리히 암살범의 소재를 신고하는 자에게 1천만 코루나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체코 프라하에서 사망후 독일 베를린으로 옮겨지는 하이드리히의 관




무덤속으로 들어가는 하이드리히의 관 




1942년 5월 27일, 보헤미아·모라비아 보호령 총독대리 하이드리히가 

체코슬로바키아 레지스탕스의 공격을 받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 사건은 영국의 지원을 받은 체코인 영국 특공대 얀 쿠비츠와 요제프 가베크가 시도한 암살 사건이었다.  

아침 출근길에 베를린-프라하 간 고속도로에서 

권총과 수류탄의 공격을 당한 하이드리히는 즉시 시립병원으로 옮겨졌고, 

당시 프라하에서 가장 솜씨 좋은 외과의사인 호올 바흠이 수술했다. 

당시 하이드라히 폐와 복부에 파편이 꽂혀 있었고, 중상이었다.

 수술 후 하이드리히는 회복 조짐을 보였으나 6월 3일 위독상태에 빠졌다. 

히믈러가 2명의 전속 의사를 급히 파견했지만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6월 4일 아침 하이드리히는 사망했다. 

하이드리히의 사망 원인은 비장의  세균 감염에 의한 염증이엇다.

그것은 비장에 박힌 파편 제거시 하이드리히의 자가용 벤츠 승용차 시트 쿠션으로 들어간 말총(말꼬리 털)이

파편과 함께  비장에 박혀 발생한 2차적 세균 감염에 의한 염증 때문이었다.

하이드리히를 최초로 수술한 바흠은 전후에 나치 협력자로 체포되어 강제 노동형에 처해졌다. 

이 자는 지뢰 제거 작업에 투입되었으나, 지뢰가 폭파하여 중상을 입었고,

 아무도 그를 치료하려 하지 않으려 하여 라이프치히로 옮겨졌으나, 그 곳에서 사망했다.

 레지스탕스들은 성 카를 보르메우스 교회에 숨어있었는데, SS와 게슈타포가 습격하여 모두 죽여버렸다. 

하이드리히가 죽은 날, 152명의 유대인이 처형되었다. 

6월 9일, 복수를 이유로 7 SS 의용산악사단 프린츠오이겐의 일부 병력이 차출되어

 한낱 농촌에 불과했던 마을 리디체를 완전히 파괴시켰다. 

마을 주민 중 남자들 172명이 처형되었고, 여자들은 수용소로 보내졌으며,

 아이들은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로 입양보내졌다. 

이 아이들 중 일부는 나중에 다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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