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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의 나치 SS 리더였던 레옹 디그렐[WW2 Belgium Nazi SS Leader Leon Degrelle]

슈트름게슈쯔 2014. 10. 9. 16:58







벨기에 플랑드르에서 벌이는 벨기에인들의 나치 독일 전쟁 자원병 모집 행사  - 1940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벨기에의 레옹 디그렐(Leon Degrelle)은 

나치 독일의 SS 친위대에 자진입대해서 나치 군대의 사병에서 나치 군대의 장군까지 진급했던 인물이었다.  

즉 레옹 디그렐(Leon Degrelle)은  나치 독일  무장친위대에 지원한  벨기에의 지원병이었다.

레옹 디그렐(Leon Degrelle)은 1906년 6월 15일 벨기에 부용Bouillon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양조업자였고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으며 어머니는 멋진 여성이었다.  

   가족은 몇 세대에 걸친 예수회 신자였고 나는 노트르담 대학에 입학해서 

고전과 신학을 공부했지만 정치학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법학을 공부한 후에 시험에 합격했다.

 예수회는 마음을 열고 지식을 추구하라는 가르침을 주었었는데 그는 그대로 실천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정치사상에 대해 일부가 반대했기 때문에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   

그는 1940년에 프랑스 경찰에게 체포되어 폭행당한 후에 축축한 

감방 안에서 고문을 받다가 독일군 덕분에 풀려났다.

  렉스당 당수(사진참조)였기 때문에 독일군은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벨기에 정부의 도움은 커녕, 어떤 구원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무능한 정부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그는 무능하다고 지칭한 벨기에 정부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독일군에 입대하게 되었던 동기는 형제가 살해당했고, 부모와 그의 아내가 고문을 받은 후에 살해당했고 

아이들은 어디론가 끌려가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벨기에의 나치 렉시스트 단원들 - 1940년 




 나치 독일 제28 SS 기갑척탄병 사단 (SS Sturmbrigade Wallonien) 발로니 사단의 군기와  레옹 디그렐




벨기에의 대표적 문화 공연장인 브뤼셀의  팔레 데 보자르(Palais des Arts)를 나서는 레옹 디그렐과 페르낭 루로 

 

레옹 디그렐 뒤로 걸어 나오는 자는 갓 임명한 렉시스트 운동 단체의 수석 대리인 빅터 매시스이다 




철십자 훈장을 수여 받고 나치식 경례를 올리는 레옹 디그렐




30번째 생일 축하 파티로 벨기에 브뤼셀에서 발로니 사단의 사진전을 연 레옹 디그렐 - 1943년 6월 18일 


같은달 그의 발로니 사단은 동부전선 러시아 남부 독일 SS 비킹 사단에 배속되었다.



레옹 디그렐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조국을 점령한 독일군에게 협력했던 

유럽 파시스트 지도자 중에서도 

 독일의 최전선까지 달려갔을 정도로 특이한 경우의 파시스트 인물이였다. 

그는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정치학과 미학과 철학도 공부했고 20세의 나이에 5권의 책을 집필했다. 

무능력한 벨기에 정부에 환멸을 느낀 그는 카톨릭 참여운동에 합류한 후에 

사회주의 렉스당Rex Party를 만들어서 25살의 나이에 의원이 되었다.

당시로서는 유럽에서 가장 어린 의원이었다. 

1936년 5월 24일 34명의 렉스당원이 벨기에 상원이나 하원에 진출했지만 더 이상 세력을 넓히지 못했다.

 디그렐은 베니토 무솔리니와 아돌프 히틀러를 공공연하게 지지했고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하자 간첩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 남부의 감옥에서 7주를 보냈다.   

 독일이 프랑스와 벨기에 등을 점령하자, 디그렐은 나치 점령군을 응원하며 

히틀러를 '반 볼세비키 십자군'의 지도자로 불렀다. 

1941년 6월 독일이 러시아를 침공하자 그는 벨기에인 자원부대에 지원한다.

 그리고 그는 35세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총을 잡아본 적이 없었지만 독일군의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했던  가운데 레옹 디그렐(Leon Degrelle)은 7번이나 부상을 당하면서 사병에서 

제28 SS 기갑척탄병 사단 발로니에(Wallonien) 지휘관까지 진급했다. 

그는 기사싶자훈장과 오크잎 훈장을 포함한 많은 훈장을 받았고 나치군에서 비독일인으로 가장 유명했다. 

 레옹  디그렐은 나중에 나치 독일이 패망한 후 나머지 여생을 스페인에서 보냈다. 

벨기에는 그에게 3번이나 사형을 언도했지만 실제로 집행할 수 없었다. 

그는 3권의 책과 다양한 수필을 썼는데 벨기에에서는 판금되었다. 

그가 쓴 러시아 원정(Campaign in Russia)은 동부전선의 잔혹함을 잘 알려주는 좋은 자료이다. 

어떤 벨기에 군무관은 디그렐에 대해 "병사로는 그가 전장에서 보여준 용기에 존경을 표합니다.

 벨기에 국민으로는 그를 잡을 수만 있다면 반역자로 기꺼이 처형할 겁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유럽의 마지막 파시스트 지도자로 생존해 있던 그는 1994년 4월 1일, 

스페인 말라가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마지막까지도 히틀러의 편을 들어 

나치를 선택한 자신의 신념을 후회하지 않았다. 








독소전쟁 당시 동부전선의 레옹 디그렐



 레옹 디그렐은 1940년 플랑드르와 왈룽 지역에서 첫 번째 자원부대를 만들었고 대대로 편성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들은 훈련소로 전출되었다가 독일 중앙집단군에 배속되었다. 

 1941년 10월 레옹 디그렐 부대는 기본 군사교육과 산악전 훈련을 마친 후에 우크라이나로 배치되었다. 

그리고 레옹 디그렐 부대 일부는 데미얀스크로 가서 제9 군에 배치되었다가 이듬 해에 남부에서 다시 합류했다. 

그들은 1942년 7월 소련군 안드레이 블라솝 장군을 사로 잡는 전과를 올렸는데

소련군 블라솝 장군은 나중에 나치 독일의 동맹군으로 반공산주의 러시아군을 지휘했다. 

 동부전선 데미얀스크에 배치되었던 동료들은 나중에 우크라이나에서 제5 SS 기갑사단

 비킹(Wiking)에 배속되었다가 1944년 4월에 제28 SS 기갑척탄병 사단으로 독립했다. 





동부전선의 독일 제28 SS 기갑척탄병 사단 (SS Sturmbrigade Wallonien) 발로니 사단의 레옹 디그렐을 방문한 


나치 독일 SS 친위대의 최고 지도자 하인리히 히믈러 - 1943년 봄




     

 나치 독일의 패전 1년전 패색이 점점 짙어지는 전황속에서도 Sdkfz 251 하프 트랙 장갑차 위에서


자신의 28 SS 기갑척탄병사단(Sturmbrigade Wallonien)의 퍼레이드를  환호하는 레옹 디그렐과 벨기에 어린이들 - 1944년 4월 1일 







사망한 레옹 디그렐(Leon Degrelle)의 형제 에드워드의 장례식 - 1944년 






브뤼셀의 샤룰루아 광장에서 벌이는 독일 제28 SS 기갑척탄병 사단 (SS Sturmbrigade Wallonien) 발로니 사단의  

창단 기념식 퍼레이드의  레옹 디그렐과 독일 SS 상급대장 요제프 디트리히 - 1944년 4월 1일 


  

벨기에 브뤼셀의 레옹 디그렐(Leon Degrelle)사단 창단기념 행진에는 

나치 독일 SS의 요제프 디트리히Dietrich를 포함해 많은 유명인사가 참석했었다. 

그의 부대는 1940년에 400명으로 시작해서 나중에 약 15,000명까지 늘어났지만, 전후에는 400명만 남았다. 

원래의 연대병력 6,000명 중에 2,500명이 전사했다. 

레옹 디그렐(Leon Degrelle) 사단은 대단한 전과를 기록했고 

히틀러는 개인적으로  레옹 디그렐(Leon Degrelle)에게 오크잎 훈장을 수여했다. 

그는 온갖 악행의 전쟁범죄를 자행한 히틀러의 하수인이자 나치 독일의 광신도였던 

 집단무장 친위대 SS의 협력자였던 것이다. 





참호속의 독일 제28 SS 기갑척탄병 사단 (SS Sturmbrigade Wallonien) 발로니 사단 


자기 부하 병사들에게 담배를 건네는  레옹 디그렐 - 1945년 2월 




 독일 하인켈 He-111 폭격기를 타고 스페인 산 세바스찬 라 콘차 해변에 비상 착륙한 레옹 디그렐 - 1945년 5월 







photo from : Histom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