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스페셜

명동의 수류탄 전쟁[1950 Year,s Seoul Myeong-dong Grenade War]

슈트름게슈쯔 2015. 9. 19. 18:55



1950년대의 서울 명동입구





  1950년대의 서울 명동거리





명동 한국은행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다 지루하여 고무신을 벗고 있는 개장수 아줌마  - 1957년 






서울 명동 국립극장 - 1959년 11월 




  미군의 파인애플형MK 2 세열 수류탄



현재에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비롯한 인천과 부산및 목포등

전국의 주요 항만 도시들과 대규모 인구가 밀집해 있는 광역시들및 

산업 인구에 의해 경제권이 크게 형성되어 있는 공업단지 도시들및 

여러가지 새로운 이권 사업을 발견할수 있는 지방의 신도시 지역등에는 

제각기 여러가지 종류의 이름이 붙여진 파벌로 형성된 폭력 조직들에 가담을 하여

그곳에서 밥을 먹는 소위 깡패와 양아치로 지칭되는 조직 폭력배들이 득실되고 있다.

해방 이후 자유당 정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서울 시내에서 가장 세력이 큰 깡패집단에게 

이권을 주고 그들을 동원시켜 선거유세장에 조직적으로 출몰하게끔 만들어

야당 후보자에게 폭력과 욕설을 퍼부으며 방송용 기물과 연단을 파괴하고 

유세장을 아수라장의 난장판으로 뒤엎어버리며 야당의 선거유세를 방해했다.

대한민국 여러세대 연령층의 대다수 국민들은 조부모대와 부모대및 자식대까지의 

3대를 같이 거치며 그때부터 이제까지 사회에서 경험하며 보고 느낀대로 

깡패와 양아치들의 집단인 조직 폭력배들을 국민들을 괴롭히고 서민들을 울리는 

사회악이라는 형태의 시선으로 바라 본다.

하지만 현재에도 조직 폭력배와 밀접한 경제적 연결 고리를 가진 사회 계층의 

어떤이들은 그들을 어쩔수 없는 사회의 필요악으로 보기도 한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서울과 지방에서는 별의별 깡패가 득실되는 사회였다.
중앙의 굵직한 정치깡패부터 전국구의 지방깡패및 대학생, 고등학생깡패 

그리고 심지어 동네 골목깡패 까지 사회곳곳에서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까운 그러한 시대가 존재 했었다. 
지금과 같은 치안이 비교적 잘 유지되는  현 한국사회에서도 조직 폭력배들이 

아예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법망의 테두리 안에서 교묘히 활개치듯 

사회의 부조리한 이권사업으로 그맥을 이어오고 있다.
자유당시절 당시 그 이름 또한 쟁쟁했던  서울 장안의 대표적인 두 깡패집단은 

이정재가 이끄는 동대문파와 이북에서 내려온 이화룡이 이끄는 명동파의 양대세력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과도기에 사회 여러곳에서 부조리한 형태로 이권을 노리고 싸움을 벌였다.
그들은 건설중앙회란 어용단체를 차려놓고 여러가지의 불법적인 방법으로

 건설업자들의 뇌물수수및 미군 자재의 독점권획득사업등을 이용하여 별의별 사취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땅짚고 헤엄치기이자 각종 이권에 얽매인 폭력주식회사의 돈벌이를 내어주는 것은

 자기들의 밥줄을 포기하는 것이라 항상 경계를 하고 다녔다.
건설중앙회의 감찰부 책임자는 홍영철이란 자로서 경찰검문에도

 의심받지 않기 위해 항상 사냥복 차림으로 부하들을 데리고 다녔다.
그의 찦차 에는 그들을 노리는 반대세력으로 부터의 방어를 위하여 

언제나 엽총을 소지하고 다녔다.
홍영철의 주먹부대는 기회를 엿보던중 그들의 이권에 걸림돌이 되는 

평안남도파의 거두이자 형님격인 이화룡에게 도전했다.
이러한 가운데 명동파 습격의 작전은 개시되어 미도파 백화점을 건너 명동으로 갈때

 건설중앙회 감찰부의 신강수란 자는 수류탄을 가지고 갔다.
여차하면 인원이 모자라는 여건하에 떼거지로 덤벼드는 명동의 주먹들에게 던질 참이었다.
그는 명동입구의 다방에 숨어들어 안전핀을 뽑았다.
양쪽의 주먹들이 피튀기는 공방전을 벌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백차12대가 출동하고 서로의 이권을 

목적으로한 충돌은 명동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경찰이 개입하여 진압하는 가운데 다음날 각 신문에는 대서특필되어 자유당시절 

깡패들의 몰락을 재촉한 이 싸움으로 그들의 운명또한 정치 깡패몰락의 신호탄이 되고 말았다.
한편 신강수는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아들긴 했으나 다 끝난 싸움판에 던질수가 없었다.
다급한 김에 수류탄을 변소에 집어 넣었다.
그러나 수류탄이 변소에서 폭발하는 바람에 신강수 혼자만 중상을 입고 말았다.
대한민국 서울시내 명동의  수류탄 폭발은 6.25사변 이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도 터진 것이었다.
 서울의 번화가 명동의 다방 변소란 엉뚱한곳에서 터졌고 하마터면 

국내 최초로 깡패들의 대량살상용 무기로 이용될뻔 했던 것이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정권을 잡은 박정희 소장의 명령에 의해 한달전

4.18 고려대학교 시위 귀가 학생들에 대하여 야간 습격 폭행사건을 일으킨 

정치깡패 이정재의 동대문파와 이화룡의 명동파 깡패들을 모두 검거하여 

 사회 정화 차원에 의해 대국민 사과와 참회의 깡패 조리 돌림 시가 행진- 1961년 5월 21일 





참고글 출처 : 유지광 의 대명(大命) [홍익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