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考古學]

2차 세계대전 북아프리카 전선과 중동의 로마시대 유적 - WW2 Roman remains in the Middle East and North Africa Front

슈트름게슈쯔 2015. 12. 21. 22:57

 

 

2차 세계대전시 북아프리카 리비아 지중해 연안의 로마시대 유적

랩티스 마그나 옆의 독일 아프리카 군단 병사들- 1941년

 

 

 

 

2차 세계대전시 북아프리카 전선의 로마시대 유적 근처에 포진한 이탈리아군의 47mm대전차 포대

 


 

지중해 연안 중동 레바논의 리타니강 근처 로마시대 유적지 마르지우윤에 침입한  영연방 호주군 병사들 - 1941년 7월 3일 





지중해 연안 중동 시리아의 로마시대 유적지로 진입한 영연방 호주군의 브렌건 캐리어- 1941년 11월



제 2차 세계대전 중반기였던 1941년 

지중해 연안 중동의 시리아는 비시 정권 프랑스의 치하에 있었다.

나치 독일의 괴뢰 정권이었던 프랑스의 비시 정권은 

독일이 북아프리카 이집트 북부 지역으로 군대를 이동시킬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히틀러와 타협을 하여 시리아를 침공했던 것이었다.

히틀러는 명목상의 방어로 프랑스의 비시 정권 군대가 충성을 해줄것울 기대했다. 

이 지역을 장악한 영국군과 영연방 호주군과 프랑스 비시정권 군대의 충돌시

영국군대에 대한 프랑스 비시 정권 군대의 매우 격렬한 저항에 한편으로 놀랐다.

그것은 영국으로서는 대단히 불쾌한 놀라움이었다.

그에 대하여 저명했던 영국의 앨런 무어헤드 기자는 동맹국 프랑스를  

이 싸움에 끌어들여야 되는가라고 지적을 했다.

시리아는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1918년부터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아왔다.

그러다가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지 1년후 1940년 나치독일에 의해

프랑스가 함락되고 비시 정권 프랑스가 설립되자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시리아와 레바논도 추축국에 가담을 하였다. 

이에 1941년 6월 8일, 영국과 자유 프랑스를 선두로 한 연합국은 

영국령 인도 제국 군사와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아프가니스탄, 남아프리카 연방,

 캐나다 그리고 에티오피아 제국의 군대를 이끌고 팔레스타인에 상륙하였다. 

이 상륙을 발단으로 연합국과 추축국 사이에 시리아와 레바논을 둘러싼 전투가 벌어진다.

1941년 6월 14일, 연합국은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을 항복시키는데 성공하고, 

이어 트랜스요르단과 시리아로 북상한다. 

이란과 이라크의 패배로, 영국군은 이라크에 있는 공군 기지를 탈환하여 

영국 본토의 공군과 결집하려고 하였다. 

독일은 그리스로의 침공을 시작함으로써 

시리아와 레바논에 주둔하던 군대가 일부가 빠져 나갔다. 1

941년 6월 21일,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가 함락되어 

시리아는 연합국에 항복하였고, 약 2주 후인 7월 6일,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가 점령되어 레바논 역시 연합국에게 항복하였다.

그리고 1941년 9월 16일 자유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 이후 

그들이 획득한 식민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시리아를 

프랑스 공화국의 일부로 선언한다,

하지만 시리아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1년후 

추축국에 피해를 입은 대부분의 국가들 대열에 

놓이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들의 

회담에 따른 독립시킬 국가들의 편성 구도에  따라

1946년 4월 1일 완전한 독립을 성취하게 된다.

하지만 그날부터 현재까지 시리아는 국가적으로 한시도 평화를 

유지할수 없는 전시적 국가의 형태로 놓이게 된다.

시리아의 고대 유적지로 유명한 팔미라에서 

2015년 8월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점거한 

 2000년 전에 지어진 두 개의 신전이 무참하게 폭파당했다. 

8월 23일에는 팔미라의 바알 샤민 신전이 폭파당했으며 

8월 30일에는 벨 신전이 폭파 당했다.

바알 샤민 신전은 바알 샤민이 서기 17년에 세워진 페니키아의 신전이다.

벨 신전은 서기 32년에 세워진 셈족의 신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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