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

병자호란과 설운도

슈트름게슈쯔 2017. 4. 19. 10:39



남한산성- 2015년 12월 4일 


조선 인조당시 1636년 12월 만주족의 국가 청의 침략에 맞서

 47일간 항전했지만 백성들이 대량 살륙당하고 결국 청나라 태종에 항복했던 

병자호란 삼전도의 굴욕적 역사가 남아 있는 남한산성  



조선을 침략해 들어온 청나라 대군에 인조는 남한산성에 완전히 고립됐다. 

항전이 길어지면서 성 안에는 모든 것이 부족해졌다. 

성안의 사람들과 짐승이 모두 굶주려 남은 말과 소를 다 잡아 먹었다.

 매서운 추위로 군사들은 제대로 한 번 싸워보지 못한 채 얼어 죽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처참한 나날들에 남한산성을 지원하기 위해 

남하하던 근왕병들의 연이은 패전 소식이 날아들었고 

조정에서는 화친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아 갔다.

그리고 마침내 1637년 1월 17일. 직접 조선으로 출병한 청 태종 홍타이지는 

인조에게 남한산성 밖으로 나와 귀순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낸다.






삼전도비(三田渡碑) - 2013년 5월 20일 



삼전도비(三田渡碑)는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석촌호수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년 12월∼1637년 1월간에 청과 조선이 한 전쟁)에 승리한 

청나라 태종이 조선에 요구하여 세운 전승비로 굴욕의 역사를 상징하는 비석이라 할 수 있다.

       그간 비석의 치욕적인 의미로 말미암아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1963년 굴욕의 역사도 역사이니만큼 사적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중기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이후 

명나라와 조선은 급속히 국력이 쇠약해졌다.

 이때 만주족은 후금을 건국하여 세력을 확장하면서 일취월장 성장하게 된다.

 광해군(光海君, 1575~1641, 재위기간 1608∼1623)의 재위기간 동안에는 

명과 후금 사이에 적절히 외교(양면정책)를 통해 위기를 넘겼다.

 이후 인조반정(仁祖反正, 1623년 4월 11일, 이귀·김유 등 서인 일파가 

정변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인조를 왕위에 앉힌 사건)으로 

광해군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권력을 잡은 인조와 서인세력은 

후금에 대해서 적대적인 관계(친명배금 親明排金)를 유지하여 

조선과 후금간 긴장은 갈수록 높아져갔다.      

후금(後金 : 뒤의 淸)은 급기야 1627년(인조 5) 1월 중순부터 3월 초에 걸쳐 

광해군을 몰아낸 것을 구실로 군사를 일으켜 정묘호란(丁卯胡亂)을 일으킨다.

 조선은 왕인 인조가 강화도로 피신하는 등 바로 수세에 몰렸지만 

장기간 출병에 부담을 느낀 후금은 작전상 강화조약을 맺고 철수한다.       

내몽고 지역을 완전히 평정한 청나라 태종은 더 강대해져서 1636년(인조 14) 12월 

직접 1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게 된다. 

압록강을 넘어온지 12일만에 한양이 함락되고, 

인조는 미처 강화도로 가지도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급히 피신하게 된다. 

남한산성에 고립된지 두달만에 인조는 끝내 항복하고 말았다.

삼전도비[三田渡碑, 삼전도청태종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는 

이때 일어난 전쟁인 병자호란(丙子胡亂)에 대한 청나라의 전승 기념비이며, 

청 태종에 대한 송덕비(頌德碑)이다. 

청나라 태종이 자신의 공덕을 알리기 위해 조선에 요구하여 1639년(인조 17년)에 세워졌다. 

      당시 한강 상류의 나루였던 삼전도에서 청 태종 앞에 끌려 나간 인조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라는 예를 올렸다.

 이는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의 풍습으로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이마를 땅에 찧는 의식이다. 

야사에 의하면 이때 인조의 이마에는 유혈이 낭자했다고하니 

한마디로 경술국치((庚戌國恥, 1910년 8월29일 일제에 의한 국권을 상실한 치욕) 에 

버금가는 병자국치(丙子國恥)였다.           

 1945년 광복 직후에 주민들이 다시 땅 속에 묻어버렸던 것이 

1963년에 홍수로 다시 모습이 드러났고, 이후 여러 차례 훼손과 이전을 거듭하다가 

1983년에 송파구 석촌동에 옮겼다가 고증을 거쳐

 2010년 4월 25일에 비석이 서 있던 원래 위치인 석촌호수 언덕위로 다시 옮겼다. 






설운도- 애기봉 -1985년 8월 30일 지구레코드 제작 


1636년 병자년 12월 12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해 내려와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살륙한 청나라 군대에

숨져간 수많은 백성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애기봉으로 병자호란의 한을 읊은 가수 설운도  



애기봉


일천육백 삼십육년 십이월 병자호란때 

그날의 슬픈역사 애기봉아 너는 알지 

한맺힌 어린 넋의 울음소리가 

지금도 저 강을 건너 메아리되어 가는데 

애기봉아

 애기봉아 

너는 어이 말이 없느냐~~~~  


일천육백 삼십육년 십이월 병자호란때 

삼전도의 그 슬픔을 남한산성 너는알지

 피맺힌 어린 넋의 울음소리가 

오늘도 저 강물 따라 흘러 흘러서 가는데 

애기봉아 

애기봉아 

너는 어이 말이 없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