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

칠레 쿠데타시 산티아고 거리 피노체트 반란군의 M 41 워커 불독 전차 Chilean Coup Pinochet rebel forces M 41 Walker Bulldog Tank in Santiago

슈트름게슈쯔 2017. 6. 23. 17:49

























칠레 쿠데타 당시 수도 산티아고 거리에 투입시킨 

반란군의 미국제 M 41 워커 불독 전차와 

영국제 호크 헌터 전투기를 투입시켜  

아옌데 대통령의 모네다 대통령궁을 폭격하고 정권을 찬탈한 

반란군의 수괴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  - 1973년 9월  11일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은 1973년 9월 11일 

미국과 기득권층의 지원을 등에 업고,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 당일인 1973년 9월 11일, 미 중앙정보국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는 

자신을 신뢰하여 칠레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했던 

아옌데 대통령을 태연히 배신을 하고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미 중앙정보국이 작성한 쿠데타 계획에 따라 칠레 공군을 장악한 

피노체트는 모네다 대통령궁을 영국제 호크 헌터 전투기를 투입시켜 폭격하고 

미국제 M41 불독 전차와 보병으로 둘러싼 뒤, 사격을 가해 모네다궁에 남아 저항하던 

아옌데 대통령의 경호원들과 측근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피노체트의 투항 권고에 결국 아옌데 대통령은 같이 싸웠던 

동료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투항하라 한 후 AK -47 자동소총으로 자결했다. 

물론 피노체트는 약속 따윈 지키지 않았다. 

죽기 전까지 본인은 죽일 의사는 없다고 주장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부 인사들은 아옌데의 곁으로 보내젔다. 

그래도 일말의 죄책감 때문인지 혹은 국제사회의 시선때문인지 

아옌데의 가족이 망명가는 걸 막진 않았다.  

그렇게 쿠데타로 사회당 소속의 대통령이었던 살바도르 아옌데가 이끌던 

민선 정부가 무너졌고, 정권을 잡은 피노체트는 곧이어 저항하는 

모든 민중세력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살아남아 미국에 망명해 있던 아옌데 정부의 외무장관까지 끌고와 죽였다. 

당연히 아옌데 싫어하는 미국에서 그의 측근이 도망쳐왔다고 받아줄리가 없었다. 

바로 붙잡아서 칠레로 보내주었다.  

피노체트 정권은 좌파라는 의심이 가면 끝까지 추적해 모조리 체포해서 구속하거나 살해했다. 

재판이나 합법적인 절차는 무시됐고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좌파정당에 가입한 자들과 많은 지식인들, 예술인들이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칠레의 유명한 가수 빅토르 하라도 이때 군부의 손에 의해 희생당했다.

 쿠테타가 일어난 지 일주일만에는 3천명에 달하는 인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피노체트는 1973년 12월까지 쿠데타 직후 3개월 동안 수천 명을 처형했다. 

공산당원을 포함한 좌익계 인사들을 체포하여 공설운동장에서 사살하는 바람에, 

옆에 흐르는 마포초 강이 피로 붉게 물들었을 정도였다. 

의회 내 좌파세력을 척결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이 조치는, 

정당정치의 활성화라는 칠레정치 고유의 특성과 배치되는 학살이였다. 

피노체트는 집권 이후 17년 동안 "내 허락 없이는 낙엽 하나도 떨어질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칠레를 통치했다. 

그의 나이는 이때 59세였다.

 이후 피노체트가 집권한 17년 동안 40,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정치적 이유로 불법구금되었고, 고문까지 당하여 심각한 인권침해를 겪었고,

 3,000여명이 강제로 끌려가서 실종 되었거나 살해되었다. 

당시 칠레에서 연행된 사람은 10만 명을 헤아리며 이 가운데 수천 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특히 칠레 육군 정보부를 개편해 창설한 보안국(DINA : Dirección de Inteligencia Nacional)을 

시켜서 쥐도 새도 모르게 반정부 운동가들을 태평양 한가운데로 던져 넣어

 칠레 앞바다가 인골이 가득할 정도였다. 

특히 이들은 밤중에 갑자기 들이닥쳐 사람들을 잡아갈 정도로 치밀했다. 

그야말로 DINA는 당시 칠레에서 소련 스탈린 시절 KGB의 

베리아와 마찬가지 형태의  저승사자와도 같은 존재로, 

만약 칠레의 한 마을에서 '호세가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그 호세는 다음날 고문받은 시체의 몰골로 칠레 앞바다에 떠밀려 오는 경우가 흔했을 정도였다.  

칠레 사람들은 이러한 피노체트의 정부에 만행에 질려서 

아르헨티나의 히틀러라고도 불렸던 호르헤 비델라 치하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갈 정도였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정권은 오히려 칠레 피노체트 정권보다 더 악랄한 정권이었다. 

사망자와 실종자 수만 보더라도 아르헨티나는 1만은 넘어갔고 

비공식 추계로 보면 3만은 넘는다고 했다. 

칠레는 공식 수치만 3~4천 수준이고 개별 학자 차원의 비공식적 추산 통계중 

가장 높은 수치가 만 오천 가량이다. 

문제는 칠레 피노체트의 집권기간이 73~89년으로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정권의 76~83년보다 더 길었다는 것이다.






photo from : 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