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

여수 순천 반란 사건 1948 - Korea’s 1948 Yeosu-Suncheon Rebellion

슈트름게슈쯔 2017. 10. 5. 15:56
































여수 순천 반란 사건을 촬영했던 미국 각 언론사의 특파원 기자들 - 1948년 10월 


LIFE 지 기자 칼 마이단스 (왼쪽에서 두번째)와 그의 동료 AP 기자 롬 램버트와 

시카고 데일리 메일 기자 키스 비치와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의 앨런 레이먼드 기자 



여수·순천 사건(麗水順天事件) 또는 여순 사건(麗順事件)은 

한때는 "여수·순천 반란사건"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여수와 순천의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단지 두 도시에 주둔하고 있던 군대가 일으킨 사건이라 하여 

공식명칭에서 반란이라는 단어가 삭제되었다.

다른 명칭으로는 "여수 주둔 14연대 반란사건", 혹은 

그냥 "14연대 반란사건"이라고도 부른다. 

북한에서는 '려순병란(여순병란)'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여수, 순천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주둔 군부대의 사병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반란이니까. 

남부군을 쓴 이태가 신동아에 기고한 실록의 제목도 이것이다.

여수·순천 사건(麗水順天事件) 또는 여순 사건(麗順事件)은 

1948년 10월 19일부터 10월 27일까지 

당시 전라남도 여수시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의 군인 2,000여 명이 

중위 김지회, 상사 지창수 등 남로당 계열 군인을 중심으로 

제주 4·3 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무장 반란을 일으켜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전라남도 동부 지역의 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반란군에 의해 경찰 74명을 포함해 약 150 명의 민간인이 살해당했고 

정부측 진압 군경에 의해 2,500여 명의 민간인이 살해당했다.

이승만 정부 수립 2개월 만에 일어난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은 철권 통치와 반공주의 노선을 강화하였다.







photo from : Carl Mydans 

              Tom Rambert

               Keyes Beech

                 Allen Raymo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