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 극장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

슈트름게슈쯔 2011. 1. 24. 16:46

Once Upon A Time In America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

감독 ; 세르지오 레오네
출연 ; 로버트 드니로, 제임스 우즈, 엘리자베스 맥거번, 튜즈데이 웰드


 

 

 

 

이방인이, 그것도 이탈리아 감독인 레오네가 미국사회의 밖에서 침착하면서도

 냉정한 시선으로 미국을 해부하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슬픈 대하 서사극이다.

이 필름이 20년 만에 229분짜리 필름으로 복원돼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시간으로는 3시간 49분이다.

레오네는 극장이나 배급사의 횡포로 229분짜리 필름을 139분으로 축소해 상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앞과 뒤의 연결고리가 맞지 않아 영화를 보는 시간 내내 불편했다.

그뿐 아니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축소판영화를 개봉한 후 평론가들부터 혹독한 비평을 들어야했다.

분명 1980년대 세계최고의 영화에 들어가야 할 이 영화가 평가절하 되고

혹평을 듣는 이유는 극장용으로 상영하기 위해 가위질당한 탓이다.

다행히 유럽에서 감독의 편집된 필름이 발견돼 이 영화의 재평가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139분짜리 필름을 극장에서 볼 때의 심경은 참담했다.

몇 년이 흐른 후 210여분짜리 필름이 비디오로 출시되었지만 이 필름 역시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팬들은 출시되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문제는 필름의 엉성한 화질과 색채다.

 210분이나 되는 필름을 화면으로 보면서 어떻게 해서 139분짜리 필름보다 못하게 편집했는지 이해되지가 않았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절대적이다.

전편에 흐르는 주제음악은 이 음악이 왜 세계 10대 영화음악에 선정되었는지를 알게 한다.

특히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는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을 적신다.

이 영화의 도입부와 마지막장면에서 흐르는 ‘갓 블래스 아메리카’는 구슬프고 애잔하다.

이 곡은 행진곡 특유의 리듬이 배어있어 유쾌한 곡으로 들어왔는데 라스트신에서의 음악의 비장미는 영혼을 뒤흔든다.

성인이 된 누들스가 옛 애인과 만나는 장면에서 흐르는 ‘예스터데이’는

영화가 끝나도 오래도록 가슴을 뒤흔드는데 비틀스가 천재음악가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한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가슴적시는 음악과 세르지오 레오네의 연출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어 음악과 영화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찍었다.

 

대공황과 금주령 속에서 소매치기나 도둑질로 생계를 이어가던 아이들은 훔친 돈을

 감춰놓고 훗날 성인이 되어서 나누기로 했지만 친구가 배반하면서 그 돈을 독차지 한다.

누들스는 그 친구에게 애인마저 뺏기고 청소차의 분쇄기에 뛰어든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침착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미국사회를 조명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229분 동안 가슴에서 쓸쓸함을 떨쳐내지 못하게 한다.

어린 날에는 우정으로 친구를 사귀고 젊은 날에는 배반을 위해 우정을 감옥에 보내고,

정치계에 뛰어들어 명사행세를 하는 어린 시절의 친구는 미국사회의 허구적 신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어쨌거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레오네를 최고의 감독으로 만들었으며 필름 누아르 최고의 걸작으로 기록되었다.

 

특히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편집은 가히 정석을 뛰어넘는 그 무엇인가를 남겨준다.

카메라 역시 주인공을 가깝게 잡아내지 않는데도 관객들의 시선을 영화에 빠져들게 한다.

레오네가 만든 웨스턴시리즈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그리고

‘옛날 옛적 서부에서’는 정통 웨스턴으로 상징되는 미국식 영웅 신화를 파괴하고 조롱한다.

서부영화는 더 이상 존 포드와 존 웨인, 조지 스티븐스와 아란 라드, 아서 펜과 폴 뉴먼, 프레드 진네만과 게리 쿠퍼,

존 스터지스와 버트 랭커스터, 율 브린너, 로버트 테일러, 리처드 위드마크, 헨리 해서웨이와 게리 쿠퍼,

델머 데이비스와 아란 라드로 대변되거나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의 영화를 마카로니웨스턴이라고 명명한 평론가도 있지만 레오네의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사악하고

탐욕스러워 음모와 배신을 일삼으며 돈이 되는 일에는 생명을 담보로 결투를 벌인다.

그러나 정통 웨스턴에서는 못 느끼는 허무와 지족한 공허감이 배어있다.

그의 영화엔 인물의 움직임보다는 인간의 추악한 내면묘사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가 사용한 테크닉은 클로즈업의 극대화다.

 

레오네의 영화엔 주인공의 얼굴, 그것도 눈이나 시거를 문 입술

그리고 아무렇게나 자란 턱수염이 영화의 묘한 매력을 풍겨준다.

그것만이 아니다.

다 헤진 옷이며 판초는 주인공에게 있어 필수다.

이에 가장 어울리는 배우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리반 클립이다.

레오네의 영화에 나오는 두 사람은 거의 대사가 없다.

독특한 개성과 외모로 주인공을 읽어내게 하는 것이 감독이 관객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가 좀 더 살았다면 ‘옛날 옛적 러시아에서’를 만들었을 텐데

 이제 태양과 총과 허무의 오페라는 웨스턴의 신화로만 존재한다.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Sergio Leone)는 흔히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

<once upon a time in the west>와 같은, 미국식 서부영화를 비틀어

유럽식 마카로니 웨스턴으로 새롭게 창조해낸 감독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진정한 걸작은 84년도 작품이자 그의 유작인 once upon a time in America일 것이다.

이 영화는 갱스터로맨티시즘(Ganster Romanticism)계열의 최고작 중 하나로써, 영화는 외피는 갱스터 무비이나.

실제로 일반적인 갱스터 영화로 보긴 힘들지 않을까 싶다.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은 1900년대 초기 세계를 휩쓴 경제공황과 금주법시대의 뉴욕 브룩쿨린에서 힘들게 살아가던

유대계 이민 친구들의 삶의 애환 그리고 그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배신 등이 그 축을 이룬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실 그러한 내용을 넘어 형용하기 어려운 뜨겁고 무거운 분위기가 짙게 깔려 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말해야 좋을까?

영화의 장면 장면들 그리고 그것들과 깊은 조화를 이루던 모리꼬네의 음악을 떠올리면 마음 한 구석이 한없이 가라앉는 느낌이다.

 

이 영화가 처음 국내에 상영되었을 때, 아마도 수입사의 난도질로 반이상이 잘려나갔다.

최근에 DVD판이 나오긴 했지만, 내가 처음 이 영화를 접했던 것은 211분짜리 비디오 두개였다.

처음 긴 시간에도 압도되었지만, 그 판으로로도 처음에는 전체적인 줄거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녹록치가 않았는데,

 잘려나간 영화가 국내에서 상영되었을 때 아마도 관객들의 입에서는 육두문자가 나왔을 터이다.

 

로버트 드니로와 제임스 우드와 같은 명우의 호연 그리고 엔리오 모리꼬네의 잔잔한 스코어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영화가 더욱 좋은 것은 바로 제니퍼 코넬리 때문이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사랑하는 이의 추락을 냉정한 시선과 절제된 감정으로 응시하는

차갑고 때론 뜨거운 느낌들을 정말 멋진 눈빛으로 훌륭하게 그려낸다.

(아마 그녀의 그 느낌이 그대로 남은 것은 그 다음해인 85년도에 찍은 <페노미나>였다.

최근 작품들인 <헐크><뷰티플마인드><모래와 안개의 집>을 보았을 때에도

항상 이 작품에서 각인된 그녀의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먼저 누들즈와 데보라의 사랑이 있다.

누들즈는 한마디로 표현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못된 짓을 일삼으며 결국 친구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살인을 하고

출감 후에도 맥스나 다른 친구들과 조직을 이루어 살인이나 밀수등의 범행을 저지르며 냉혹한 거리의 삶을 살아간다.

영화는 그의 삶을 정당화하기 보다는 그 시대 이민자들의 삶의 행로가 (보통) 그러할 수 밖에 없었음을 보여주고

그 속에서 사랑과 우정과 배신과 회한의 고리를 구축해간다.

거기에는 상당한 보편성이 존재한다.

 

그는 맥스나 친구들의 우정 속 어둠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동시에 데보라에 대한 사랑도 운명처럼 그와 얽혀있다.

 

출감에서 나온 누들즈와 데보라의 재회장면에서 데보라는 안달하듯 그를 불러대는 맥스,

그리고 주저하는 누들즈를 보면서 "어서 가봐 어머니가 부르시잖니?(Your mother"s calling you)라고 한다.

그건 어린시절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순간 맥스가 그를 부르는 순간에도 나왔던 대사인데

결국 우정과 사랑, 어느 하나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outsider인 누들즈의 슬픈 운명을 보여준다.

 

누들즈는 그러한 거리의 삶 속에서도 마치 자신의 더러운 손과 영혼을 담궈 정화시키는 성수(聖水)처럼 데보라를 가슴 속에 품는다.

어린 시절 데보라는 범접하기 어려운 순결의 영역에 있고 그녀에 대한 그의 사랑은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체로 억압된 체로 굳어진다.

 

출소한 그의 구애를 뒤로 하고 냉정하게 헐리웃으로 떠나는 그녀를 누들즈는 잔인할 정도로 범한다.

그것은 사랑이기 보단 그에게 익숙한 거리의 폭력처럼 비치며 그 순간 어린 시절 데보라의 나체를 엿보며

다가가지 못하던 그의 관음(觀淫)과 누적된 심리적 억압이 폭발하는 장이다.

 

그는 그런 식으로 살아온 것이다. 다음 날 헐리웃으로 떠나는 아마도 그의 폭력에 경악한 데보라의

차가운 시선을 무심하게 쳐다보던 누들즈의 눈빛이 압권인 정거장에서 그의 진정성은 드러난다.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데보라와 재회한 누들즈, 담담하게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데보라는 이상하리만큼 젊어 보이고 예전의 모습 거의 그대로이다.

결국 그녀는 누들즈가 기억하는 데보라일뿐이다.

사랑은 추억이 되지만 가슴속 그녀는 변치 않는다.

 

다음으로 누들즈와 맥스의 우정과 배신이다.

맥스는 어린 시절부터 누들즈의 어둠의 세계를 함께하고 그것을 공유한다.

누들즈는 이후 그와 거의 모든 것을 함께 하지만, 맥스의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과 행보에 모두 동조하지는 않으며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거리에 남고자 한다.

맥스는 자신의 욕망을 극대화하는데 누들즈가 최대의 걸림돌이 될 것을 알고 있지만 우정때문에 쉽게 그를 포기하고 정리하지 못한다.

 

그러나 결국 조직의 압력 속에 연방준비은행을 턴다는 가짜계획을 흘리고 그의 죽음을 걱정하는 누들즈가

그의 계획을 차단케하기 위해 경찰에 신고하여 그의 범행을 막으려 할 것이라는 것까지 예상하여

자신은 총격에 거짓으로 죽고 누들즈는 죄책감으로 평생을 죄책감으로 살아가게 하는 간악할 정도의 음모를 감행한다.

죽이지는 못하고 벗어나게는 했지만 결국 굴레를 씌운 것이다.

베일리 장관이라는 이름으로 드림을 이루었지만 비리 속에 퇴물이 되어버린 맥스와 누들즈와의 재회장면에서

맥스의 간곡한 청에도 불구하고 누들즈는 배신한 맥스, 그의 돈과 여자와 삶을 앗아간 맥스를 죽이지 않는다.

 

그는 뜨거웠던 우정을 나눈 한 친구의 삶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진실을 이야기한다.

당신의 삶이 그렇게 비참했다면 당신을 친구로 여겼던 나 또한 그럴 것이라고.

사실 그의 이 한마디 속엔 친구를 살리려고 했었던 자신만의 진실을 끝까지 간직했던 누들즈의 우정을 넘어,

먹물처럼 짙은 삶의 무상함과 쓸쓸함이 깊게 베어 있다.

그건 유태계 이민자들이 쫓던 아메리카 드림과 그것의 허상,

그리고 그것을 통해 놓쳐버린 삶의 가치들에 대한 미련일 수도 있다.

 

맥스의 (예견된) 자살과 마지막 엔딩에서 그때로 돌아가 친구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잊고자 들이마신

아편에 취해 불현듯 누들즈의 얼굴에 흐르는 미소는 그래서 더욱 서글프고 씁쓸하다.

 

갱스터 무비의 외피를 통해 이만큼 아픈 미국(이민자)의 역사를 해부하고 드러내면서

동시에 삶의 의미에 대해서 깊은 성찰을 하게 하는 영화도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일상이 물위에 떠다니는 부표(浮標)처럼 경박하게 요동칠 때, 오래된 앨범처럼 가끔씩 꺼내어,

그 무거움과 쓸쓸함에 깊이 젖어보고 이상하리만치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게 솟아오르는 경험...

 그것이 이 영화가 주는 선물이다.

 

 

 

1933년, 갱들에게 쫓기던 누들스(Noodles: 로버트 드니로 )는

그들에게 피투성이가 된 친구 뚱보(Fat Moe: 래리 래프  / Young Fat Moe: 마이크 모네티 )의

열쇠를 가지고 간이보관함에서 가방을 꺼낸다.

하지만 거기엔 돈이 들어있지 않았다.

 

그로부터 35년간 맥스를 비롯한 친구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빠져있던 누들스에게

'베일리 재단'이라는 곳에서 롱아일랜드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받게 된다.

비어있는 돈가방과 그 옛날의 사진들, 화장실 나무벽 틈.

누들스는 옛날 그 틈을 통해 무용을 하고 있는 뚱보의 여동생인 아름다운 데보라(Deborah: 제니퍼 코넬리 분)를 훔쳐보았었다.

 

누들스(Young Noodles: 스콧 타일러 분)를 주축으로 짝눈(Young Cockeye: 아드리언 커란 ),

팻시(Young Patsy: 브라이언 브룸 ) 등은 어릴 때부터 좀도둑질을 하는데 어느날 술에 취한 주정뱅이를 털려다가

프랑스에서 막 이민 온 맥스(Young Max: 러스티 자코보 )에게 선수를 빼긴다.

 

 

누들수는 이렇게 만난 맥스와 친한 사이가 되지만 짝사랑하는 데보라는 누들스가 한낮 불량배에 불과하다며 거절한다.

맥스가 가담된 이들은 누들스의 기발한 방법으로 갱단의 밀수품을 안전하게 운반하고 큰 돈을 모은다.

 이들은 그 돈을 넣은 가방을 역의 간이 보관함에 넣고 벌어 드이는 돈의 절반을 떼어 공금으로 모으기로 한다.

큰 부자가 될 것을 기뻐하며 거리를 걷던 이들에게 곧 총을 든 버그가 뒤쫓아와 누들스는 첫 살인을 하게 되어 감옥에 들어간다.

 

다시 장면이 바껴서, 뚱보의 술집을 방문했던 누들스는 공원의 고급 묘지에 묻혀있는 세 명의 친구,

'짝눈' 필립 스타인, '팻시' 패트릭 골드버그, 그리고 '맥스' 맥시밀리안 버코버츠를 방문한다.

 

33년에 죽은 이들에게 '누들스' 데이빗 아론슨, 1967년이라고 쓰여있다.

묘지에서 자신에게 남겨놓은 현금 가방이 든 열쇠를 발견하고 그 역에 가보니

'다음 일을 하기 위한 선불'이라고 쓰인 돈가방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장면이 바뀐다.

세월이 흘러 막 출감한 누들스는 마중나간 맥스(Max: 제임스 우즈 분)를 따라 뚱보의 술집으로 데려간다.

누들스가 감옥에 있는 사이에 맥스의 수단으로 이들은

프랭키(Frankie Monaldi: 죠 페시 분)라는 거물과 손을 잡고 밀주로 사업이 번창하고 있었다.

맥스, 팻시(Patsy: 제임스 하이든 분), 짝눈(Cockeye: 윌리암 포사이스 분), 그리고 뚱뚱해진 페기(Peggy: 에이미 라이더 분)와

극장에서 연기를 한다는 데보라(Deborah: 엘리자베스 맥거번 분)도 만난다.

 

 

한편 이들은 프랭키의 지시로 다이아몬드를 턴 후, 돈과 바꾸기 위해 온 조(Joe: 버트 영 분)의 일당을 무참히 사살한다.

이것을 본 누들스는 프랭키가 시켰다고 말하는 맥스에게 그들이 나중에는 우리까지 죽일 것이라고 말하며 프랭키와 관계를 끊기로 한다.

 

노조위원장인 지미(Jimmy O'Donnell: 트리트 윌리암스 )를 돕게 된 누들스 패거리는 서장이 노조에 폭력 진압하자

병원에서 네 명의 딸 끝에 득남한 아이들의 번호표를 모두 바꿔치기한 뒤 그에게 병력 진압의 철수를 요구한다.

한편 데보라는 누들스의 사랑을 거절하고 스타가 되기 위해 헐리웃으로 간다.

금주법이 끝나가면서 이들에게도 시련이 닥쳐온다.

 

누들스는 비록 맥스와 함께 불법 일을 하기는 하지만 맥스의 지나친 검은 야망에 둘 사이는 점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맥스는 평생 꾸어온 꿈이라면서 연방 준비은행을 털자고 제안하지만 누들스는 반대한다.

맥스의 애인인 캐롤(Carol: 튜즈데이 웰드 ) 역시 누들스에게 이 일을 막기 위해

경찰에 신고 해달라고 하면서 그가 않으면 자신이 하겠다고 말한다.

불법 음주가 끝난 것을 기념해 뚱보의 술집에 파티가 열린다. 이때 누들스는 결국 경찰에 밀고하고 마는데.

 

  누들스는 맥스의 애인이었던 늙어버린 캐롤을 만난다.

그에게 캐롤은 맥스가 우리를 속였다며 자신도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이 들이 닥쳤을 때 제일 먼저 피한 것은 다음 아닌 맥스였다고 한다.

 

누들스는 15년 전의 창업식 기념 사진을 보며 그곳에서 30년 만에 데보라와 해후한다.

베일리 장관이 주최하는 파티에 초대되어 여기 왔다며 그가 누구냐고 묻는 누들스에게 데보라는

그가 얼마 전에 정가에 들어선 사람이라며 파티에 가면 우리의 추억도 끝난다고 가지 말 것을 애원한다.

 

이때 누들스는 그 옛날 어린 시절 맥스와 똑같이 생긴 데보라의 아들

데이빗(David: 러스티 자코보 )을 보고는 마침내 모든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데보라가 맥스와 결혼했으며 맥스가 베일리 장관이라고 것을.

이어 파티에서 마침내 누들스와 베일리 장관인 맥스가 만난다.

 

베일리 재단은 의회 매수와 마피아와의 관계 등의 의혹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

맥스는 누들스의 밀고를 눈치채고 친구들을 죽여 자신과 함께 누들스가 죽인 것으로 가장한 것이다.

친구를 살인범으로 씌우고 돈을 가로 챘으며 여자까지 차지한 맥스.

 

 

이제 자신의 야망이었던 베일리 재단이 스캔달에 몰리게 되자 마지막으로써 자신을 죽일 사람을 누들스로 선택한 것이다.

맥스는 누들스에게 그때 일은 자신이 꾸민 것이라 항상 빚으로 생각했다며 기꺼이 죽어주겠으니 자신을 쏘라고 부탁한다.

맥스와 그밖의 친구들과 지내던 일을 회생하던 누들스는 그의 일을 수락할 수 없다며 쓸쓸히 그의 저택을 걸어 나온다.

그리고 지나가는 트럭에 뛰어든 맥스의 자살과 함께 화면엔

아편 연기속에서 빙그레 웃고 있는 젊은 시절의 누들스의 모습이 보인다.

 

 

 

photo from : Daum.,net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1985년 마산 3.15회관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