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6.25 전쟁 Korean War

6.25 사변 당시 치열했던 마산 서부 진동면 여항산 전투

슈트름게슈쯔 2012. 6. 25. 19:41

 

 

 

 

진동 마을의 수령이 대단히 오래된 당산나무

 

 

 

좌우가 벼랑인 여항산의 칼능선 

 

 

 

진동 여항산(艅航)은 한국전쟁의 뼈저린 역사가 숨겨져 있다.

6.25 사변 당시 진동지구 여항 서북지구에서는

인민군과 아군과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은 미군의 사상자 수가 대단히 많이 발생하였다.

오죽했으면 미군들은 이 여항산을 "갓댐"山(god damn)이라고 불렀을까. 

 

 

 

 

서북산 전적비

 

얼마전에 서북산 일대에서 국군들의 유해를 발굴하여

2010년 까지도 그 흔적이 군데군데 구덩이로 남아 있었다.

실로 아물지 않는 우리의 현대사 이다.

 

 

산 이름이 바다도 없는데 뜬금없이 여항(艅航)인가?

사연인즉슨 배를 댈 만큼 산이 낮다는 뜻인데

역설적으로 이름을 그렇게 부르며 산의 기운을 낮추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아래에서 바라보는 산세가 범상치 않다.

 

 

 

 

무학산 방향

 

 

 

임도에서 봉화산 갈림길을 만난다.

 

우측 편백임도는 학동저수지로 연결되어 있는데 편백숲의 풍광이 매우 뛰어 나다.

 

 

 

 

6.25 사변 당시 마산 인근의 전형적인 비포장 도로 - 1952년

 

 

 

부산 교두보 작전 당시 마산 근처에서의 미군과 북한 공산군의 움직임 - 1950년 8월

 

 

 

마산의 서부지역 격전지 진동으로 향하는 미군 제 24사단 병사들 - 1950년 7월 18일

 

 

 

6.25 사변 당시 마산 인근의 철로변에서 북한 공산군 T-34/85 전차의 공세를

 

기다리며 대비하는 미군 제 78 전차 연대의 M-24 채피 전차 - 1950년 8월 11일

 

 

 

 박격포를 발사시키는 미 제 5사단 병사들 - 1950년 마산 진동

 

 

 

마산의 서부지역 진동 전투에 투입된 미군의 M-26 퍼싱 전차 - 1950년 여름

 

 

 

6.25 사변 당시 전선에서 급식을 받는 양산 쓴 코믹한 미군 병사 - 1950년 마산 진동

 

 

 

부상병을 옮기는 미 제 5사단의 위생병 - 1950년 8월 30일 마산 진동

 

 

 

31일간의 북한 공산군과 벌인 치열한 진동 여항산 전투에 지쳐 쉬고 있는 생존 미군 RCT 베테랑 병사

 

- 1950년 마산 진동 

 

 

 

6.25 사변 당시 북한 공산군의 소련제 T-34/85 전차에 대항하기 위하여 미국 포트 녹스에서

 

태평양을 건너 실려와 한국의 부산항에 하역된 미 제 73 전차 대대의 M-26 퍼싱전차 - 1950년

 

 

 6.25 동란 당시 북한 공산군의 소련제 T-34/85 전차는 2차 세계대전을 통털어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우수했던 걸작전차였다.

T-34 씨리즈의 전차는 2차 세계대전 말기까지 2만대가 넘는 엄청난 수효로 제작되어 나치 독일의 기갑부대를 패퇴시켰다.

그로부터 5년후 소련군의 T-34/85 전차가 전투의 무대를 지구의 반대편인 극동의 한반도로 돌려서

김일성이 지원받은 그 전차가 한반도 이남에 전쟁의 참화를 일으켜 엄청난 대량 살륙을 가할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했던 북괴군의 소련제 T-34/85전차 200여대에 밀려 부산 근처까지 후퇴하면서 투입한 미 육군의 전차들중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는 것은 90mm 주포를 탑재한 M-26 전차밖에 없다는 사실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전선에서 처럼 재현되었다.


 

 

 

6.25 사변 당시 창원역에 도착한 미 해병 1 사단 1전차 대대의  M-26 퍼싱 전차

 

미 본토에서 급히 출발한 전차대는 전차포의 영점도 제대로 잡지 못해서

역 구내에서 인근 산의 표식에 포사격을 해서 역 주변을 포성으로 뒤 흔들었다.

 

1950년 8월 3일 부산에 도착한 5연대는

그 다음 날로 기차와 트럭을 이용해 북한군에게

고전하고 있던 마산 진동 전선에 급파되었는데
마산 서부 진동 전투에서부터

한국의 전투 경찰이 해병 5연대에 배속되었다

 

 

 

6.25 사변 당시 마산의 서부지역 진동에서는 대단히 치열한 전투가 벌어 졌었다.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나이든 민간인 남성들도 전시에 인력 동원으로 징발이 되어 

미군 장비를 전투지역으로 날라다 주는 노동의 보수로 밀가루를 배급받는 자들도 많았다.

그들은 지게에 미군의 군장비와 식량 및 포탄등을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산위로 지고 날랐는데

전투가 한참 치열할때는 총탄이 무수히 날아와  혼비백산 하여

어쩔수없이 일단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지게에 실어 미군과 국군에게 제공할 밥마저 지게와 같이 벗어 내동댕이 쳐버리고

 산 아래로 도망을 갔다고 한다. 

 

 

당시 마산 진동면의 어느 한 민가에서는

전투중 전차가 공격을 받고 폭발하여 주위로 박산된 그 파편들이

시골 집의 나무 기둥에 무수히 박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전투중 폭발하여 파편이 날아간  그 전차가

미군의 M4 셔먼전차인지 M24 채피전차인지 M26 퍼싱전차인지

아니면 북한 인민군의 소련제 T-34/85 전차인지는 전혀 알길이 없다.

어쩌면 그것은 6.25 전쟁 당시 마산 진동에서 일어났던 실화이었겠지만

실제로 폭발되었던 그 전차가 아군의 전처였든지 적군의 전차였든지

그것은 쉽게 밝히기 어려운 미스터리 이기도 하다.

다만 낙동강 전선의 왜관 전투와 진주지구의 전투에서

미 공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된 북한 인민군의

소련제 T-34/85 전차들의 파괴된 형태를 유추해보면

그것이 소련제 T-34/85 전차였을법도 하다.

 

 

 

경북 왜관에서 미군 전투기의 공습으로 파괴된 북한 인민군의 소련제 T-34/85 전차 - 1950년

 

 

 

 당시 직접 6.25동란을 경험했었던 분들의  

증언에 의하면 인민군들이

마산의 진동 고개 바로 너머까지 쳐들어 왔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