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 극장

마릴린 먼로의 투명 드레스 [Marilin Monroe,s Transparent dress]

슈트름게슈쯔 2012. 7. 13. 11:14

 

 

마릴린 먼로의 아름다웠던 모습은 전 세계 남성팬들에게 있어

언제나 전형적인 섹스 심볼이었다.

또한 그녀는 멋진 여성이었다.

마릴린 먼로가 1959년에 출연했던 영화 [뜨거운것이 좋아]에서

입었던 의상들을 살펴 보면

그녀가 거의 속옷을 착용 하지 않고 촬영했던 형태를 보여준다. 

 

 

 

 

 

드레스 속에 속옷을  걸치지 않은 마릴린 먼로 패션

 

 

 

  드레스 뒷면에 브래지어 스타일로 수를 놓은 스트립 드레스 패션

 

이 스타일의 드레스는 1920년대의 패션은 아니었다.

 

 

 

1920년대의 정통 스타일 드레스

 

 

 

영화 : 뜨거운것이 좋아(Some Like It Hot : 1959년)에서의 토니 커티스와 마릴린 먼로

 

 

2009년 1940년대 할리우드 영화배우 스타 토니 커티스가

원조 ‘섹스 심볼’ 마릴린 먼로를

임신시킨 사실이 공개돼 화제가 된바 있었다.

 영국 대중지 ‘더 선’은 2009년 8월 7일 커티스가 9월에 발간했던 새 회고록에

지난 1959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를

찍었을 때 먼로와 바람을 폈던 이야기가 적혀 있다고 밝혔었다.

 신문에 의하면 커티스의 회고록에는 “나는 먼로와 침대에 있을 때

 그녀의 생각이 어디에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며

당시 두 사람이 바람을 폈던 상황이 낱낱이 공개됐다고 한다.

 또 “그녀는 배우였다.

그녀는 배역을 맡으면 남자가 원할만한 인물로 변신했다.

그녀와 함께한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

이라는 내용도 회고록에 담겨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커티스와 먼로는 각각 배우 자넷 리, 극작가 아서 밀러와 결혼 한 상태였다.

하지만 커티스는 매력적인 금발미녀에게 반했고, 먼로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커티스는 “결국 영화 촬영이 끝난 뒤 먼로와의 관계가 한 순간의 꿈처럼 사라졌다고 말했고,

 이후 먼로가 자연 유산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회고록에 기술했다.
할리우드 최고의 육체파 배우였던 먼로는 1962년 36세의 나이에 약물과다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2009년 9월에는 먼로의 생전 모습이 담긴 미공개 동영상이 발견돼 경매에 부쳐진 바 있었다.

 

그로부터 2년후  마릴린 먼로의 연인이자 헐리우드 인기 여배우인 제이미 리 커티스의 아버지로

잘 알려진 할리우드의 미남 스타 토니 커티스는

2011년 9월 29일 라스베가스에 위치한 그의 자택에서 향년 85세에 심장마비로 숨졌다.

토니 커티스는 본명이 버나드 슈왈츠(Bernard Schwartz)로 1925년 미국 브롱크스에서 태어났다.

 1949년에 영화에 데뷔한 토니 커티스는 1958년 시드니 포이티어와 함께 출연한

<흑과 백>을 통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었다.

<흑과 백>으로 토니 커티스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시드니 포이티어는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아카데미 영화제

사상 최초로 흑인의 연기상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토니 커티스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의 명장면인 샤워장 살인 장면에 등장한

인기 배우 자넷 리와 1951년에 결혼하여 1962년까지 같이 살았고,

1958년에는 딸인 제이미 리 커티스를 얻었다.

제이미 리 커티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활동했으며,

 호러 시리즈의 명작으로 불리는 <할로윈> 시리즈의 주인공과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부모에 이어 인기 스타가 되기도 했다.

토니 커티스는 젊은 시절 잘 생긴 외모만큼이나 여성 편력도 화려해,

첫 결혼이었던 자넷 리 외에도 네 번이나 결혼했으며,

자넷 리와 결혼 생활을 하던 1959년에는 빌리 와일더 감독의 <뜨거운 것이 좋아>를 촬영하던 중

 상대 배우인 마릴린 먼로와 불륜을 저질러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1920년대 무성영화 시대의 여배우 글로리아 스완슨의 드레스 패션

 

유명 의상 디자이너들은 그들의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헐리웃 영화 제작시 섹시한 여배우들을 대상으로 드레스를 제작 했다.

 

 

 

 

 

 

마릴린 먼로의 1950년대 패션

 

1950년대 헐리우드에서는 여배우의 순결성은 그리 크게 평가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는것 보다  배우의 신체적 장점을 강조하는것이 중요했다.

 

 

 

마릴린 먼로의 유명한 영화의상 전문 디자이너 - 오리 켈리(Orry-Kelly)

 

 

 

스크린속에서 마릴린 먼로가 벌거벗은 칵테일 드레스를 입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보고

 미국의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벌거숭이같은 스트립의 장면이라고 말하였다. 

 

 

 

2단계 구조의 특별한 디자인으로 제작했던 마릴린 먼로의 드레스

 

 

 

 

 

 

마릴린 먼로의 가슴 사이즈는 36D 컵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보통 가슴이 더 크게 보이도록 브래지어를 재봉사에게 맡겨 바늘질로 고친 후에 착용했다. 

 

 

마릴린 먼로가 언론에 공개한 그녀의 잠자리 의상은 

잠옷을 입지 않은 알몸 상태 그대로 

잠자리에 들며 샤넬 No 5 향수 몇방울을 몸에 뿌릴뿐이라고 했다.

 

 

 

마릴린 먼로의 1955년 영화[7년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에서 마릴린 먼로가

착용했던 이 브래지어는 경매에서 5천2백 달러에 팔렸다.

 

 

 

 

 

 

 

 

 

 

 

 

 

마릴린 먼로의 영화 7년만에 외출(The Seven Year Itch, 1955년)의

이 사진은 마릴린 먼로를 대표하는 사진으로 사진작가 샘 쇼의 작품이다.

 또 이 사진은 할리우드 사상 가장 섹시한 사진으로 뽑히기도 했다.

마릴린 먼로 섹시 사진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는 쇼는

먼로의 사진을 티셔츠에 프린트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이에 2005년 마릴린 먼로 측은 사진의 퍼블리시티권을 주장했다.

현재 이 법적 공방은 생전 마릴린 먼로의 주거지였던

미국 뉴욕의 지방 법원으로 넘겨진 상태다.

 

 

마릴린 먼로가 1955년 영화 '7년만의 외출'에서

지하철 환기구 바람에 날리는 치마 자락을 잡는 장면을 연기할 때

입었던 흰색 드레스는 2011년 6월 19일 미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렸던 경매에서

460만 달러(약 49억8272만원)에 낙찰되었다.

 

로스앤젤레스의 프로파일즈 인 히스토리 경매소에서 열린 경매는

미 여우 데비 레이널즈가 그동안 수집해온 영화 소품들이 경매에 나왔었다.

79살의 레이널즈는 당초 이 수집품들로 박물관을 건립할 계획이었지만

박물관 건립이 무산되자 이들을 경매에 내놓았다.

 

프로파일즈 인 히스토리가 당초 200만 달러에 낙찰될 것으로 예상했던

먼로의 흰 드레스는 전화로 응찰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수집가에게 낙찰됐었다.

 

그날 경매에 나온 물품 가운데 상당수는 레이널즈가

2011년 사망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이었다.

 

 

 

 

마릴린 먼로가 유행시킨

 

이 스타일의 브래지어는 오늘날 Shelf스타일 브래지어로 불려진다.

 

 

 

경매에 나온 마릴린 먼로의 브래지어 가격은 7000달러

 

 

 

영화속에서 마릴린 먼로가 타이트한 드레스를 입은 장면

 

 

 

 

 

 

 

 

마릴린 먼로의 영화 제작 장면들 

 

 

 

 

 

 

photo from : Gotta-ciara.live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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